brunch

매거진 에세이Q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Jan 27. 2020

다음 세대의 영웅들을 위해서

영화 '글래스'

 슈퍼히어로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상상력의 덕을 크게 봐야 했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비로소 눈속임에서 벗어나 그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숙성된 고민들이 표현되고 있다. 영화 '다크 나이트'를 통해서 전례 없던 악역이 등장한 지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악역은 10년이 지난 후에 새로이 변신에 성공해 아예 슈퍼히어로라는 틀 자체를 초월해버렸다. 배트맨 더러 '당신이 날 완성시킨다'는 말을 뱉었던 그가 온전히 하나의 인간으로서 홀로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다른 세계로 떠나버린 조커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남아있는 슈퍼히어로의 잔재들을 마주해보자.


 영웅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열심히 뛰고 있다. 별별 능력과 정체성을 갖춘 영웅들이 등장하다 보니, 무슨 능력을 갖고 있기에 특별하다는 설명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 그렇기에 각각의 정체성의 배경이 중요해진다. 무슨 환경과 상황 속에서 정의를 꿈꾸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들. 또, 그 기원에 대한 질문들도 있다. 영웅은 탄생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이제는 동기나 신념에 따라 선악을 양분해서 구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의 삶에 간섭하고 있다. 세계가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그만큼 갈등의 숫자도 많아진다. 그러니 이제 정말로 문제가 되는 건, 문제라는 사실보다는 문제의식인 셈이다.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거나 회복해야 하는 가치로 보는 가. 이는 더 큰 힘을 가지고 있기에 숙명처럼 들러붙는 책임의식인 셈이다. 물론 모든 슈퍼히어로가 이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책임과 무게 속에서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오히려 그 능력을 숨기고 사는 것이다.


 데이비드 던 또한 그런 사람이다. 한없이 후퇴하는 영웅. 소란스럽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 어찌 되었든 힘을 갖고 있으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 영화에서 그를 보면서 성격 유형적으로 봤을 때, 에니어그램 9번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에게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거세게 도피하는 사람이다. 3편에 이르러서의 그는 과거에 비해서는 조금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은 그가 입은 복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데이비드 던은 후드 아래에 숨는다. 우비처럼 보이는 옷, 유니폼을 통해 그의 정체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성격부터 약점을 상징하는 바까지 완벽하게 계산하고 디자인된 복장, 그는 그렇게 '감시자'라는 이름을 얻는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비로소 발현하는 기원이라는 점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케빈/비스트였다. 그의 변신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사실, 23 아이덴티티까지만 해도 초점이 맞춰져 있던 건 '제임스 맥어보이의 변신'이었지 케빈/비스트이라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제임스 맥어보이의 변신은 명확해서 즐거웠다. 학대 속에서 원래의 인격을 지키기 위해 분열된 인격들이 힘을 더한다는 점에서 보면 모든 영화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를 반영한 형태의 초인 같다는 생각이었다. 실존하는 인물을 모티브로 구상한 캐릭터다 보니 특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으면서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었다. 어쨌거나 각종 신무기로 무장한 슈퍼히어로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조금 더 먼 미래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정말로 우리와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고 있는 개인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히어로/빌런 구분에서 벗어나는 초인적인 인물의 등장. 케빈/비스트는 그 기로에 서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강한 조명 빛에 따라 바뀌는 인격을 누가 통제하느냐 하는 점에 시선이 간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휘둘리기만 하는 힘으로써는 영웅으로 홀로 설 수 없다. 휘둘리는 힘에는 어떤 생각이나 철학도 담기지 않는다. 수단으로 전락한 영웅의 초라함은 왓치맨 속 몇 영웅의 모습을 통해서도 마주해볼 수 있다. 주도권이라고 하는 것, 선택의 힘은 선택에 휘둘리느냐 의지 속에 결정하느냐 하는 차이일 것이다. 인격이 통합되거나, 정리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못다 푼 그의 배경과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며 인격마다의 포인트를 각인시키는 과정이 좋았다. 어쨌거나 하나의 신체를 공유하는 다방면의 인격이라는 점, 입체성이 그의 힘이니까.


 우연한 사고, 과학 실험, 기연에 의지해 초인의 정체성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 특별한 환경과 이유가 아니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이유로 탄생한 인물이라는 점. 현대의 인식 속에 빚어지는 문제적 인간.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한 사람의 개인이자 여러 인격의 집단으로 우뚝 선 그의 모습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관점을 돌리는 것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 어벤져스 또한 집결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세월을 들였고, 그렇다고 엑스맨처럼 구조를 집단으로 나눠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어렵다. 엑스맨들처럼 '다양성' 자체가 그들의 힘이 되지 않으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을 테니까. 형태는 다르지만, 믿음이라는 힘으로 탄생하게 되는 슈퍼히어로의 존재라는 점에서 드라마 '아메리칸 갓'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무척 흥미로웠다. 힘에 대한 풀이는 다소 다르지만 어쨌든 '믿음'이라는 힘을 활용해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구조를 세워 설계한 대로 이뤄낸다. 초인적인 육체 능력을 갖춘 다른 두 인물과의 대척점에서 그의 역할은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데이비드 던은 불신자였다. 그는 자신을 믿지 못했다. 케빈/비스트는 믿음으로 현신할 수가 없었다. 자신 속에서 수없이 분열했다. 다만 미스터 글래스, 엘리야 프라이스만은 믿음 속에 굳건했다. 선천성 골형성 부전증으로 터무니없이 유약한 육체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공고하게 선명한 '신념' 뿐이었다. 육신은 금세라도 부서질 듯 유약하나, 신념만은 날카로웠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으로 수렴했다.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며 정체성을 고민했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낸 것이 이 영웅들의 기원이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통해 반문하며 본인의 극단에 서 있을 인물을 상정하고, 그를 사회 부적격자가 아닌 한 사람의 '슈퍼히어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지극하게 초월한다. 신념으로 무장한 천재가 기다린 건 자신의 판 위에 올라설 말들이었다.


 다음 세대의 초인들에게 건네는 경고와 격려. 마지막까지 미스터 글래스는 영웅/악당의 기준조차 초월해 존재한다. 반전으로 유명한 감독이 이 이야기를 통해 던지는 이야기는 반전은 결국,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가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 않겠냐는 물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트릴로지까지 오는 시간, 그 애정과 고민의 기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무리였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글래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