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하이 스코어'
[하이스코어]
기술의 발전이 이끄는 산업의 변화가 가장 매력적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영역 중 하나는 아마도 게임일 것이다. 캐릭터의 외형, 광원 효과, 물 표면의 질감, 그림자까지. 긴장감을 덧입히는 소리는 더 깊은 몰입으로 사람들을 유도한다. 이렇듯 기술의 진화는 게임을 대체 불가능한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조악한 수준의 폴리곤 덩어리들이 굴러다닐 때에도 우린 게임을 좋아했다. 따지고 보면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있는 거다. 픽셀 단위로 쏘아지는 총알을 보고서도 두근거렸으니까.
우리들 모두는 게이머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스토리텔러들이 집중하는 것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게임의 배경이다. 이를테면 게이머들의 손이 떠나는 시점부터, 게임의 '썰'이 탄생하는 셈이다. 6화에 걸친 게임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느껴지는 것은 하나. 게임 속의 세상이 끝나도 게임은 여전히 흥미로울 수 있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눈길이 갔던 건 점수를 기록해서 게임을 다시 하고 싶게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동전 한 번 넣고 시작한 게임이 끝나는 시점에 '다시' 그 게임을 하게 만드는 요인. 어떻게 게임을 다시 하게 만들까? 목표치 없이 엔딩을 보기 위해서만 살아남는 것보다는 더 명예로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실력의 무용담보다 숫자로 매겨지는 평가는 간단하고 확실했다. 누구나 살면서 이겨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숫자로 매겨지는 능력치라는 상징은 아직까지도 상당히 유효하다. 브론즈부터 다이아까지 매겨지는 등급 표시는 비단 다단계 회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게임기 기기에 매겨지는 숫자로 만족하기에는 부족했다. 유행처럼 퍼지는 과정에는 언제나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큰 이벤트가 생기니까. 자연스레 동네의 최강자끼리 붙으면 누가 이길지, 더 크게 보면 누가 이 게임을 제일 잘하는 사람일지가 궁금해지게 된다. 가장 잘하는 사람의 퍼포먼스가 궁금하고, 그가 왜 그런 전략을 썼는지가 궁금해진다. 게임 토너먼트는 참여자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게이머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의 큰 덕목 혹은 미덕 중 하나는 '게임은 언제나 도전 앞에 관대하게 열려있다'는 점이다. 현실 세계의 나로부터 자유롭게 떨어져 시도할 수 있다는 특징. 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게임 속 세상이 매력적인 이유이다.
그러니까 게임 속 세상, 당신은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정해진 주인공의 궤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는 게임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반복적인 도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자신의 모습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건 이전의 게임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단지 기술이 발전했기에 이렇게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탐험할 수 있는 영역을 모두 탐험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시점이었다. 남극점이건 북극점이건, 해저이건 달이건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갔던 인류에게 있어 탐험하지 않은 영역은 그곳뿐이었다. 미지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을 제외하고 주변 환경은 온통 새로운 정보들이니까.
주체적으로 극을 해석할 수 있게 키를 넘겨준다는 점에서 3편에 나오는 롤플레잉 게임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건 아마 내가 적극적으로 그런 장르의 게임을 수용하며 자란 세대다 보니 그런 점도 있는 것 같다. 롤플레잉 게임은 계속해서 더 높은 자유도를 추구해왔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역할군의 확보, 행적에 따라 결정되는 역할군 설정, 내지는 일부 규칙을 빼고는 대부분을 선택지에 포함시켰다. 반복되는 선택을 통해 게이머는 자신의 아바타를 완성한다. 이런 게임들을 반복하다 보면, 그 사람이 선호하는 역할들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시리즈로 기획된 다큐멘터리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어떻게 묶어내느냐도 눈여겨봐야 한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묶어내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내용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회차별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게임의 장르가 바뀌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도 생겨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궁금증은 다음 화를 풀어내는 열쇠 역할을 한다.
게임은 기술 발전에 따라 빠른 속도로 넓어졌다. 내적인 변화, 그래픽이나 사운드, 게임 자체의 스토리텔링. 외적인 변화, 비디오 게임이 가능한 새로운 기기들의 등장. 모든 형태의 발전이 다음 세대의 게임을 만드는 일에 영감을 줬다. 선구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엉뚱한 상상으로 포문을 열었고, 게이머들이 상호작용하며 게임은 예전보다 더욱 넓어지고 있다.
'잘 찍었네, 그림 같아(사진) - 잘 그렸네, 진짜 같아(그림)'하는 칭찬 언어의 상관관계가 앞으로는 영화와 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지도 모른다. 3D, 4D 영화들이 나오면서 점점 사람들은 스크린 밖에서도 뭔가를 하게 되고 있다.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에서 화면 밖의 관객을 화면 안의 선택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은 반대로 점점 더 큰 예산과 시간을 들여 선명한 모습과 웅장한 음악으로 채워지고 있다. 동시에 설명을 듣기 위해 손을 떼고 있는 순간도 길어졌다.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비판을 받게 된다. 주인공의 선택은 훨씬 더 견고해야 했다. 성격과 생각에 기반한 합당한 선택으로 게이머를 이끌어야 했다.
어떤 것이 가장 단단하게 게임을 이루는 핵심일까?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이유. 각자의 재미와 즐거움을 충족하는 적극적인 행동 속에서 무엇을 얻어가고 있었을까?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다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시도 만으로 결과가 정해진다면 도전의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움츠러들 바에는 도전하는 것이 낫고, 그렇다면 더 편한 환경이 만들어진 곳에서 시도하는 쪽이 낫다. 숱한 실패도 겪고, 뜻대로 안 풀려 한참을 손 놓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다시 하게 만드는 힘은 그렇다. 힘들게 깨고 난 다음, 그 다음 단계는 뭘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주먹왕 랄프', '픽셀', '레디 플레이어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