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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an 22. 2021

황야의 이야기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카우보이의 노래

 서부극 속의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변주되어 왔다. 넓은 황야 속 거칠게 모험 정신을 부르짖는 이들은 저마다의 세계를 찾아 떠나간다. 그 인상적인 특징 덕분에 해적 이야기만큼 카우보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무법의 시대를 각자의 욕망으로 풀어가는 인간을 한데 집어넣으면 서부극이 되고 카우보이가 된다. 그 성격만 담겨 있다면 그들은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과 환경에 담기더라도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에 들어가도 서부극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서부극의 배경이 되는 서부나 일반적인 SF 영화 속 우주나 미지의 개척지임은 분명하니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열차를 타고 도망에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서부극은 아니다. 그런 극적인 대탈출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적합하진 않다. 스펙터클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그림은 없지만 나름대로 소박하고 알차게 꾸려진 한 상이다. 여섯 개의 단편 묶음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서부극의 변주와는 거리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속에 위트 있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평양냉면 마냥 예상외의 맛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담백하게 이야기만으로 설득력을 갖춘다. 기본에서 빛을 발하는 그 태도는 첫 번째 단편 '카우보이의 노래'부터 명백하다.

두 번째 단편 '알고도네스 인근'

 카우보이 버스터 스크럭스는 일명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불린다. 그럴듯한 별명 외에도 '인간 혐오자'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종종 뒤통수를 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만 버스터 스크럭스는 그에 대고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건 더 나은 걸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황량한 땅의 일상이 그렇듯이 그는 술집과 마을에서 일련의 사건에 휘말린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하얀 의상이 눈에 띄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일이 꼬여만 간다. 성가시지만 화가 나는 일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불쾌감보다 꺼림칙한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다.


 서부극은 하나같이 살아가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언제나 생존은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만 유독 서부극 영화들에서는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생존에는 여타의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금을 채취하거나 마을을 떠돌며 극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은행 강도가 되거나.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생존을 영위하는 사람들 속에서 죽음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지나쳐간다.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 뒤로 죽음이 손을 잡아끈다. 삶과 죽음의 고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매 순간의 끝을 슬퍼하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다시 황야라는 무대로 돌아오면서 코엔 형제는 이런 이야기를 한 아름 들고 왔다. 2010년에 이미 '더 브레이브'를 통해 서부극 고전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는 이번엔 서부극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인물의 표현을 보는 것보다는 감독이 어떤 톤의 이야기로 설득하는 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 단편집 전반에는 삶과 죽음의 분위기가 깔려있지만 음울함보다는 관조가 느껴진다. 이야기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코엔 형제의 영화답게 잘 맞아떨어진다. 인사이드 르윈이나 여타 코엔 형제표 영화에서 느껴지는 정취가 이 단편집에도 여실히 묻어난다.


 무법천지에서 생존의 처절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건 예상치 못한 허무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노력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몫이고 노력 외의 선택은 한정적이다. 처절한 생존에서 몇 발자국 벗어난 이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가난하고, 허기져 있다. 가난한 이들이 겪어내는 고난은 달갑지 않지만 갈등은 극 속에서 깔끔하게 봉합된다. 위대한 인물들의 실패담은 아니었으니 적어도 비극적이진 않다. 황야를 무대로 숙명을 지닌 이들의 굴레가 끊임없이 서부극에 맴돌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종종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이야기 조각들을 옆으로 늘려 붙이기보다는 꾹꾹 눌러 두껍게 쌓아 올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찢어지지 않는다. 으레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영원하다지만 이 영화는 딱 러닝타임만큼을 살아간다. 그 시간만큼을 성실하게 채워낸다. 황야의 무대는 메말랐고 일상은 고되었다. 건조해서 갈라진 입가를 훑고 보니 남은 피맛이 옅게 느껴진다.


*사진 출처 : IMDB 'The Ballad of Buster Scuggs' (2018)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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