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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Mar 18. 2021

타협 대신 변화

영화 '두 교황'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집단 내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집단 내부의 갈등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항상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 새로운 질문들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나와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만든다.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엇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집단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사회를 보는 눈 또한 조금은 더 정확해지리라. 이 영화를 고른 이유도 그런 종류의 궁금증이었다. 바티칸이라는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신자가 아니기에 내게 그곳은 미지의 세계였고, 그곳을 제외한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베네딕토 16세 / 베르골리오 추기경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에 열린 콘클라베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로 7년이 지난 2012년, 바티칸은 연이은 스캔들로 안팎이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교황은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부른다. 사임할 계획이었던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교황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에선 시종일관 대화가 이어진다. 두 사람, 교황과 추기경의 대화 속에는 교회를 둘러싼 상황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가 분명하다. 의견이 충돌한다. 이견의 발생은 자연스럽다. 중요한 건 이후의 경과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의 신임을 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교황과 추기경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문제는 도처에 존재한다. 사건이 되는 사고, 문제가 되는 갈등은 의지에 달려있다. 그곳에 절대법칙은 없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관점을 다듬는다.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의 연결고리는 집단의 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우린 시대의 기억을 공유한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에는 군부독재가 찾아왔다. 반대하는 이들은 사라졌다. 군부 세력은 신부들을 무장한 저항 세력의 옹호자로 간주했다. 수많은 신부, 사제들이 살해당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신부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일이 그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그는 군부 지도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그 방법이 더 많은 이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타협이라는 말은 중하다. 교황직을 내려놓겠다는 베네딕토 16세의 전언을 듣고 베르골리오는 이 이야기를 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책임을 짊어졌다. 가난한 이들 속에서 자신의 일을 찾았다. 하지만, 그 긴 세월로도 마음속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자유롭지 못했다. 바티칸에서 발생했던 스캔들, 성추문과 부패 속에서 그는 교황으로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교황의 고해성사를 듣는다. 타협과 변화의 순간에서 선택은 발자국이 된다. 우린 걸어온 길의 뒤편으로 길게 난 흔적을 기억해야 한다. 이따금 현재의 발걸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 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으니.


 변화와 전통과 같은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집단에나 동일하게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관점의 차이로 발생하는 수많은 싸움에는 언제나 딱 떨어지는 해답 같은 건 없다. 모두의 만족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명한 관점과 상호 간에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균열이 메워질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올려다보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생각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야 없겠지만 그 감정은 조금이나마 전달되는 듯했다. 그의 눈길에 단지 아름다움만 남아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두 교황'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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