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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May 13. 2021

미지의 단어에 급습당했다.

2021년의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대하며

긋닛

 페이스북 피드에 2021년 서울국제도서전 게시물이 뜨면서 저 단어를 다. 미지의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으레 발생하는 오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폰트의 적용 오류로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맞춤법의 오류인지를 고민해보며 사전을 찾았다. 어느 쪽이든 담당자는 골치 좀 썩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슬그머니 웃었다. 그런데 웬걸 사전에 저 단어가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담당자가 웃는 나의 뒤통수를 때린 느낌이었다. 뒤통수가 얼얼해지진 않았지만, 눈이 번쩍 뜨여서 그 의미를 읽었다. 글을 매만지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동하는 단어였다. 단어란 어쨌든 관계 속에서 정의될 수 있는 말이니 대강의 생김새를 이해하는 일이 어렵진 않다. 한국인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그런 적당히 아는 말들의 연결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으니까.


 정확한 말의 뜻을 알아야 하는 상황은 그러니까 이런 '긋닛'같은 말이 튀어나올 때다. 난데없는 단어의 기습에 사전을 찾아보면서 무릎을 쳤다. 긋닛이란 단속의 옛말. 여기서의 단속은 단속()이 아닌 이 단속()이다. 주차를 단속한다는 의미의 단속이 아니었다. '끊겼다 이어졌다 함. 또는 끊었다 이었다 함.'이라는 의미의 단속이었다. 익숙한 의미의 단속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번 더 무릎을 쳤다. 몇 번의 갈림길에서 제대로 길을 짚어내야 알아낼 수 있는 뜻이었다. 단어의 의미를 궁금해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뭐가 특별하겠냐만은 뭐든 간편해야 미덕인 요즘 시대엔 충분히 특이한 일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빙 돌아가야 알 수 있는 단어는 그래서인지 더 귀하게 보인다. 구태여 멋있어 보이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의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저 의미를 곱씹어보며 감탄했다. 시대의 흐름을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속적인 것이라 믿고 살던 일상의 톱니바퀴가 굉음을 내며 멈췄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멈췄을 때는 혼란스러웠고, 그 이후엔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오히려 마스크가 없는 일상이 비일상적인 상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끊어진 것을 잇는다는 말은 무척이나 따뜻하게 들렸다. 기생충 명대사가 생각나는 참이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책을 매개로 벌어지는 축제에서 이런 주제로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하다니.

끊어진 것을 잇는다. 그 말에선 꽃의 일생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 미지의 단어에 호기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래도 내가 출판사를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만든 출판사는 혼자서 걷기엔 어려움이 많은 일이긴 하다. 20대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선택은 책임과 의무를 조금 더 유예하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스물아홉의 1년을 코로나19랑 보내다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출판사 이름도 딱히 누군가에게 어필하려는 의도가 없는 이름으로 골랐다. 어떤 정신 나간 대표가 출판사 이름을 '불온서적'으로 짓는담. INFP의 조용한 관종 기질은 꼭 이런 데서 티가 난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참가사 신청을 받고 있던데 차마 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없어 신청할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이렇게나 아쉬운 타이밍이 또 있을까. 도서전이 열리는 9월이면 아마 출판된 책이 한 권 나와있을 테지만 여하튼 아쉬운 일이다.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보니 대문에 나와있는 소개글에 긋닛의 잔향이 남아있었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은 2021년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긋닛 斷續 Punctuation

 우리가 멈춘, 여기서 2021년의 서울국제도서전이 출발합니다. 놀라운 속도로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가 멈춘 곳에서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직, 여기에 찍힌 구두점(句讀點)이 뜻이 끊어지는 곳에 찍는 구점(句點)인지, 읽기 편하기 끊는 두점(讀點)인지 잘 모릅니다. 무리가 멈춘 곳에 마침표가 찍힐까요? 우리의 멈춤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연 설명을 담은 그침표가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물음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멈추었다 다시 내딛는 발걸음이 놓일 곳이 어디인지 아직 가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지금의 멈춤이 다시 출발할 때는 익숙한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멈춤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가 지구에 남기고 있는 인류세의 흔적들을 조금 덜 남길 수 있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바이러스 앞에 평등한 인간들이, 연대가 없이는 살아남을 길이 없는 우리가, 코로나19 이후에 가야할 길에 대해서 서울국제도서전은 함께 고민할 마당을 열려고 합니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의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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