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 몽중식]
프로젝트로 인한 바쁨이 일단락되고,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막 이슈화되던 작년 2월이었다. 연남동을 지나다 외관이 독특해 눈여겨봤던, 바로 그 '몽(夢)'이라는 글자가 걸음을 멈추게 했던 '몽중식'에 갈 기회가 있었다. 오픈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방송 등으로 지금처럼 핫해지기 전, 이제 막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즈음 그때.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소규모로 직책자들만 회식으로 갔던 터라, 자칫 즐거운 식사 자리가 아닌 연장근무(?)와 같은 딱딱한 느낌의 자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잠시. 독특한 가게 콘셉트 덕분에 특별한 경험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고량주를 포함해 맥주까지 유쾌한 분위기 속에 꽤 많은 술을 먹었던 날이었다.
좋은 곳을 다녀오면 으레 아내와도 같이 가보고 싶은 맘이 생기는 것이 당연지사. 그렇게 가야지 가야지 했지만, 가게가 방송에도 소개되고 입소문을 더 타면서 예약이 꽤 어려워졌다. 올해는 기념일을 핑계로 부지런을 떨어 지난 금요일에 다녀왔다.
이번에 다시 찾은 '몽중식'은 새롭게 이사를 했다. 기존처럼 길을 가다 눈길을 끄는 외관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공간은 훨씬 넓어졌다. 그리고 변사*가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조금 더 좋은 구조랄까?
레스토랑에 무슨 변사(辯士)? 인가라는 의문을 갖겠지만, 이게 바로 몽중식이 갖고 있는 특색이자, 색다른 경험의 원천이다. 즉, '몽중식'의 가장 다른 점이 이야기 들려주는 변사 or 스토리텔러가 있다는 것이다. 대략, 2~3달에 한 번씩 주로 영화(테마)를 한 편씩 정해, 몇 개의 주요 씬을 선정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에 맞는 중식 코스 요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또, 코스로 구성된 요리에 백주(고량주)를 한 잔씩 페어링 해서 먹을 수 있는데, 이 또한 다양한 고량주를 한 잔씩 맛볼 수 있다는 게 이곳의 또 다른 묘미다. 뭐든 알고 경험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이 당연한데, 이야기 묘사와 함께 음식과 고량주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분위기에 취하고 즐거움은 몇 곱절이 된다.
고량주는 기본적으로 수수로 만든 증류주라 한다. 그 종류의 구분도 매우 다양한데, 색과 향으로 나누게 되면 백(白)주, 청(靑)주, 황(黃)주, 장향, 두 가지 이상을 혼합한 겸향 등 그 깊이가 사뭇 남다르다. 또한, 그 고량주의 종류가 몇 천 가지가 족히 넘는다 하니 그 폭이 중국 대륙만큼이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렇게 쉽사리 맛보기 어려운 고량주들을 영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에 맞는 음식과 함께 하니 그동안 타 레스토랑에서는 겪어 보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달은 1987년에 개봉되어 홍콩영화의 신드롬의 시초가 되었던 영화 중 하나인 바로 '천녀유혼'.
아내와 난 방문하기 전에 급하게 '천녀유혼'을 케이블 TV로 재관람을 했다. 87년도 영화여서 특수효과나 스토리의 촘촘함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열광했을 때가 있다는 것은 그 시대에는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였으리라. 어쨌든, 왕조현과 장국영의 리즈시절의 꽃미모만은 살아있더라!
영화의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스토리 텔러에게 들으면서, 영화를 표현해낸 요리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매 요리마다 영화의 요소와 접목한 부분을 설명해 주는데, 특히 어향 육사를 싸 먹는 얇은 피에 '섭소천' 영화 대사를 새겨 넣은 것은 정말 탁월한 영화와 음식의 융합이었다. 또, 소고기 바오 번은 작은 나무다리 소품을 더해 '영채신'과 '섭소천'이 처음 만난 장소를 구현해 내니 이 또한 영화와 음식을 하나로 만드는 기획력에 박수가 나올 정도.
심지어, 이번 천녀유혼의 경우는 영화 주인공 들의 피규어와 영화 소품으로 장식까지 한 디테일에 이곳은 정말 진심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등장했던 섭소천의 그림도 벽 한편에 걸려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와 함께하는 이곳을 즐겨보시길...
P.S. 첫 방문 때, 해당 월의 테마는 '구운몽'이었다. 마지막, 찰나의 꿈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표현했던 디저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천녀유혼'에서도 스페셜한 디저트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동영상으로 담지 못했다.
*변사(스토리 텔러)분이 영화의 씬마다 음식과 고량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최근에는 영화 테마에 맞게 의상도 맞춰 입는데, 천녀유혼 테마에서는 차파오를 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