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저녁인데? 오픈한 식당을 찾습니다!

[안동 - 병산 손국수]

by 회자정리

늘 그러하듯 성수기를 피해 9월 초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4자리를 기록한지도 두 달이 넘은 데다가 휴가 시즌도 막 끝나가서 인지 유명 관광지는 고사하고 가는 곳마다 휴가철 인파는커녕,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최근 자영업자분들의 어려움에 대한 뉴스가 꽤 많다. 실제 두 눈으로 본 지방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이미 유리창에 임대를 붙여놓은 상가도 많았고,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주요 거리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고, 유명하다는 맛집도 대기줄은 없었다. 특히, 코로나19로 밤 10시까지 영업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저녁 장사를 마무리하는 곳도 종종 있었다.



첫 행선지인 여수에서도 가려던 유명 식당이 휴일이 아닌데도 예고 없이 문을 닫는 바람에 부랴부랴 다른 식당을 찾았던 터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 묶었던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조금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정확히 저녁 7시 18분. 안동 하회마을 초입의 식당을 가려고 들어섰는데, 아뿔싸! 주변은 이미 암흑천지요. 아직, 더위가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가로등의 불빛이 처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둠을 뚫고 만난 병산 손국수


역시, 가려고 했던 식당은 물론 주변에 찜닭, 간고등어 식당들은 이미 다 닫혀 있었다. 하회마을 관광지 초입이다 보니 더 일찍 닫은 듯하기도 했지만 이제 경우 저녁 7시가 조금 넘었는데, 이건 밤새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뿜는 서울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덮쳐 왔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여행 와서 저녁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아내와 나는 각각 촉각을 다투듯,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근처 갈만한 곳을 빠르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중 평점도 높고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으로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울리고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네~! 사장님, 오늘 영업은 언제까지 하시나요?


'8시까지 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30여분 남짓. 전화를 끊고 일단 그곳으로 향한다. 차를 몰아 5분 남짓 후 도착했으나 가게 앞은 어두워보였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잠시 가게 안에 들어서자 대번에 사장님이 말을 건넨다.


전화 주셨던 분? 마감하려고 했는데 오실 것 같아서 안 닫았어요!

인상 좋은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근처에 밥집이 다 닫았다 하니, 손님이 없어 다들 일찍이 닫는다며 지금 가능한 건 손칼국수 그리고 닭개장이란다. 우리는 가게 상호가 병산 손국수니 그 가게의 메인인 손국수를 주문했다. 감자전도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서 마감.


손국수가 나오기 전 빠르게 반찬과 쌈채소가 차려졌다. 국수가 익기 전에 시장을 달래기 위한 고기 없는 쌈밥이란다. (예전에는 메뉴명이 '손국수 쌈밥'이었는데, 쌈밥이라 하니 오해가 많아서인지 최근에는 메뉴판에서 쌈밥을 가리고 '손국수'만 적혀있었다.) 어쨌든, 저녁시간이 많이 늦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는 왠지 모르게 배가 일찍 고픈 법. 상추에 얹은 밥 위에 멸치 생젓을 올려 먹는 고기 없는 쌈밥이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반찬들이 맛난다. 고추무침은 적절한 간에 식감도 그만이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인데 주방에서 열심히 국수를 삶고 계시는 주방 할머님의 내공이 엿보인다. 멸치볶음, 콩나물 무침 등 나머지 반찬도 엄마가 해주던 반찬의 향이다. 밥을 아껴가며 쌈을 싸 먹다 보니 드디어 손 칼국수가 나온다.


얼갈이배추에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예전에 청량리에서 먹었던 칼국수가 떠오른다. [참조: 이런 칼국수는 처음인걸요. - https://brunch.co.kr/@nky25/66]


진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멸치 육수 향과 싱싱한 야채의 조화가 자극적이지 않다. 마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해오는 것 같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무던한 멸치 육수 향, 고소하면서 쫄깃한 면발.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 배가 고프기도 하고 동시에 어렵게 찾아낸 식당이어서인지, 소박한 칼국수가 그 어떤 별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손국수를 다 먹어 갈 때쯤,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오늘 하동 하회마을 목적지로 도착했는데, 밥집을 찾아 헤맨 모양이다. 마감 직전이지만, 인심 좋은 사장님이 들어오시라며 흔쾌히 받아준다.


그리고 사장님이 우리 옆에서 말을 건넨다. '전화하셨을 때, 마감할까 했는데, 전화하자마자 저쪽 손님도 바로 들어오시고, 지금도 또 오시고, 손님을 부르는 손님이시네요. 반찬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밥 좀 더 드릴까요?.' 유쾌하게 웃으며 마지막 타임에 몰린 손님들에게도 그저 포근하다.


손국수와 반찬을 싹싹 비워내자, 식혜를 주신다. 달고 맛나다. 단돈, 7천 원 국수에 후식까지 포함이라니 여행길에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초저녁 어둠이 내려앉을 그때, 극적으로 만났고 또, 극적으로 맛났다.

싹싹비운 그릇 / 후식으로 나온 식혜 / 가게 앞을 지키던 복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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