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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Apr 14. 2021

이런 칼국수는 처음인걸요.

[청량리 - 경북 손칼국수]

 

 지난 주말, 일이 있어 아내와 청량리역에 갔었다. 역을 나서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미래의 천지개벽을 위한 공사판이자 난장판*쯤이랄까? 여기저기 고층의 주상복합과 오피스텔 건물 공사로 대형 트럭과 소음, 먼지들이 휘날렸다. 버스환승센터와 지하철역 출입구마다 오가는 인파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늘어선 인도 위 노점들, 그리고 선별 진료소 줄을 선 사람들까지 교통의 요지다운 소란스러움이었다. 


난장(亂場) 판의 어원은 과거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질서 없이 떠들어대던 과거마당의 모습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일을 마친 후, 때 마침 점심시간이기에 역 근처 평점 높은 맛집을 검색했다. 청량리역 건너편, 전통 시장 초입에 있는 칼국수 집. 꽤 오래된 노포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깔끔한 간판과 외관으로 '경북 손칼국수'라는 간판과 Since 1969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찾아보니 청량리역 근처에 있었는데 이전한 것이라 한다. 노포의 정감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맛만 유지된다면 시대에 맞게 깔끔하게 변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가격은 단돈 6천 원. 칼국수를 두 개를 시켰다. 


 옆 테이블의 노신사 분들이 부추전을 드시고 계셨기에 가게의 벽을 빠르게 스캔하니 부추천과 배추전을 5천 원에 팔고 있었다. 달달한 배추전을 추가 주문, 그리고 또 시선을 끄는 것이 벽에 붙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린 그림이었는데,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눈살 찌푸리는 상황일 수도 있을 텐데, 그림을 보면 엷은 미소와 함께 다들 잘 지킬 것만 같다. 


가게의 모습 - 경북손칼국수 (가운데 - 눈길 가는 그림 작품)



 먼저 나온 배추전을 다 먹고 나니 칼국수가 나왔다. 가장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뜬다. '응?... 음..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콩 냄새가 살짝 나기 하지만 밀가루 풋내가 더 강한 걸쭉한 국물이다. 기존에 먹던 멸치, 해물 베이스의 육수가 아니다. 얼갈이배추와 호박이 들어간게 전부였다


 음... 이런 칼국수는 처음이다. 


칼국수와 대파 양념장


 다시 한번 국물을 먹어본다. 맛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먹을 때는 풋내가 나쁘진 않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노신사 분들은 면을 덜어서 양념장을 비벼 드시던데 따라 해 본다. 양념장이 들어가니 풋내가 사라지고 화려할 것 하나 없지만 매력 있는 국수로 변신한다. 


 그리고 국물에도 양념장을 넣어서도 먹어 본다. 수타면의 쫄깃함은 없지만 후루룩 넘어가는 식감이 좋다. 그리고 양념장 속의 대파가 중간중간에 씹히면서 파향이 터지고 국수의 간을 절묘하게 맞춰 낸다. 후루룩, 후루룩 면치기를 하며 간간히 겉절이도 곁들여 먹는다. 


 정말 딱 이 말이 정답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숟가락을 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투박한 칼국수는 뭐지 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매력 터지는 국수로 변신한다. 


 화려할 것 하나 없지만 이런 하모니가 없다. 감탄하며 먹고 있을 때, 사장님이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난 후 먼 우리 테이블까지 면 모자라면 꼭 이야기하라며 눈을 마주치며 당부한다.  단골손님으로 보였던 옆의 노신사분들은 물론 옆에 면 사리를 더 시킨 테이블에도 직접 와서 음식 맛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부진 손으로 빠르게 음식을 하면서도 손님에게 친절함을 놓치지 않다니 오래간만에 진심이 와 닿는 그런 가게였다. 


 몇 년이 지나, 청량리역 주변의 건물이 완공되고 거리가 깨끗이 정비가 되어 천지개벽이 될지도 모르겠지만,사장님의 친절함과 단돈 6천원의 풋풋한 칼국수 맛만큼은 변함없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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