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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는 말이야...

지금 살만 한가 본데?

by 회자정리

얼마 전, 오래간만에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벌써 15년이 넘었으니 동료라기보다는 이제는 오래된 친구 같다. 나이도 비슷한 또래들이다 보니 만나면 사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서로의 요즘 근황을 시작으로 옛 동료들의 소식, 자녀들 이야기, 돈 이야기.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은 건강이야기다. 자신의 건강에서부터 가족, 주변의 건강 이야기로 퍼져나가는데... 아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삶이 참 팍팍하다.




코로나19 환자가 국내에 막 증가할 때였던. 약 2년 전. 그때도 동료들이 다 나오지 못했고, 오늘처럼 L과 K, 그리고 나 셋이서 만났다. 그날 L은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했다 얼마 전에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려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이제 40대 중반을 막 넘어섰는데. 이 나이에 뇌경색이라니, 낯설었다. 어쩌면 겪지 않은 이에게만 그럴 뿐.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일이라 생각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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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덕에 겨우 겨우 다시 2년 만에 만나, 건강이야기를 하던 차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K와 내가 요즘 남편의 건강은 어떤지 동시에 물었다.


'우리 남편, 미쳤어. 미쳤어.' L은 질문이 채 끝나기 무섭게 미쳤다는 말부터 꺼낸다.


L은 남편이 쓰러져 입원했던 기간 동안 며칠이지만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정신 못 차리고 술을 자주 먹는다며 미쳤다는 말과 함께 인생 지긋지긋하단다.


나는 '아니, 쓰러졌던 사람이 가끔 한두 잔도 아니고 자주 먹는다고?' 놀란 눈으로 물었고, K는 '남편은 좋아졌나 보다. 다행이네... 그런데, 인생이 왜 지긋지긋해? 난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살겠지만 그래도 만족할 것 같은데...'


늘 긍정적인 K답다. 그러자, '인생 살만했나 보네? 야야~ 다음 생이 어딨어? 들풀로라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며 L이 웃으며 대꾸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남편이 이제는 많이 건강해져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꽤 자리도 잡은 모양이다.


사는 게 다 똑같지 뭘 또 한 번이냐는 핀잔과 함께 요즘 사는 이야기에 더 해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다음 생에는 이랬으면 좋겠다라며 저마다의 상상에 빠져 꽤 오랜 수다를 떨었더랬다.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일이 없는. 그저 영화의 흔한 소재일 뿐인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물음은 뻔하지만 늘 잠깐의 고민을 하게 만드는 함정이 있다. 만약에 라며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다. 가끔은 '어느 때로 돌아가는 건데?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가는 거야?' 등의 조건을 물어보는 경우도 다반사.


그래도, 가끔은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팍팍하게 목메는 고구마를 먹는 것 같아도, 한 번은 살아 볼만한 게 인생 아닌가. 때문에...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한번 더?'라는 질문에 괜스레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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