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와 들깨 보숭이 부각
나에게는 조카가 한 명 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노력하는 걸 보면 다 컸나 싶다. 그런데 조카 녀석은 알레르기가 좀 많은 편이다. 고추냉이, 들깨, 과일 알레르기 등등, 그중 들깨가 가장 심하다. 들깨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목이 붓고 호흡이 어려워져 병원에서 처치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 때 급식으로 나온 음식 중에 들깨가 들어간 반찬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조카는 학교 조리사 이모님들 사이에서 특별 관리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창피한 느낌이 더 컸는데 나중에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셔서 좋다고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런 조카를 보며 밝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소함의 끝판왕 들깨와 들기름을 먹지 못하는 것이 진심으로 안쓰러웠다. 이렇게 향긋한 식재료를 경험하지 못하고 들깨가 들어간 음식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말이다. 모 CF처럼, 몸에도 좋고 맛도 너무 좋은데 직접 경험할 수가 없으니 설명만으로도 한계가 분명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맛보는 것을 대체할 수 없으니 안타깝고 답답했다.
난 들깨를 아주 좋아한다. 내게 있어 들깨의 향과 고소함은 가히 치명적이다. 어떤 경우는 너무 치명적이어서 다른 맛을 다 가리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원래 강렬한 것은 위험한 법이지 않은가.
강렬한 만큼 들깨는 비린내를 잡기 위한 탕 종류에는 꼭 필요한 식재료다. 또 우리가 먹는 깻잎은 바로 들깻잎으로 외국인들이 먹기 힘들어하는 향 채소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쌈으로도 먹고 어린 깻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니 먹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더하여, 들깨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암효과에도 탁월하고 칼슘도 많이 들어 있는 채소다. 그뿐인가 지방 함량은 고기류보다 높은데도 불구하고 혈관건강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 지방이어서 과하지만 않다면 혈관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며칠 전, 친형이 직접 키운 들깨 보숭이를 주었다. 부각으로 만들기 위해 쪄서 말리는 수고는 어머니가 해주신 덕에 난 튀기기만 했는데, 오래간만에 먹은 갓 튀겨낸 들깨 보숭이가 너무 향긋하고 고소했다. 바삭한 식감에 기름의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져 튀기지 마자 집어 먹기 바빴다.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어머니는 고추와 들깨 보숭이들을 쪄서 안방 아랫목에 말리곤 했다. 안방에서 함께 며칠 동안 동거 아닌 동거를 하다 보면 어김없이 밥상 위에 바삭하고 기름진 부각이 올라왔다. 고추는 지금도 가끔씩 부각으로 먹기는 하지만 들깨 보숭이 부각은 어느 순간부터는 마주하기 어려운 음식이 되어버렸다.
부각이 기본적으로 손도 많이 가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도심지에서는 아무래도 들깨 보숭이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형이 들깨를 직접 심어 기른 덕분에 어린 시절 추억까지 곁들어 들깨 보숭이 부각을 맛있게 먹었다.
들깨 보숭이를 준 형의 아들이 알레르기가 많은 조카인데, 지금도 변함없이 들깨는 먹지 못한다. 세상의 알레르기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들깨를 사랑하는 마음에 짧은 단상을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