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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Nov 21. 2020

24시간이 모자라

세상에 읽고 봐야 할 콘텐츠가 너무 많다.

 최근 포털에서 자동으로 추천해 준 만화 관련 카페에 가입했다. 소싯적에는 만화나 애니에 꽤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시간이 부족하다. 가입을 한 김에 이것저것 둘러보다 우연히 ‘최종병기 그녀’가 애장판으로 출시될 예정이라는 글을 봤다.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최종병기 그녀’가 반가운 이유는 바로 OST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군의 살상 병기로 개조된 치세와 남자 친구인 슈지의 러브스토리가 주된 내용이다. 일본 애니 영역 내에서 서브컬처로 분류되는 세카이계(世界系)*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보고 난 이후 심적 후유증이 큰 애니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런 슬프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OST와 정말 잘 들어맞는다. Ed(엔딩) 곡인 '안녕(사요나라)'는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 OST*로 손꼽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몇 개의 OST 곡들은 아직 MP3리스트에 여전히 남아있다. 어쨌든, 당시는 애잔하면서도 침울한 분위기의 애니였던 탓에 보다가 그만두었다. 다른 애니도 재미있는 것이 많은 데 굳이 감정 이입을 해 우울한 기분이 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아마도 자기 방어적인 결계가 작동했는지 모르겠다. 


 애장판이 출시되면 사고 싶기도 했지만 이미 책장에 책들이 가득하기에 검색을 시작했다. 정확한 결말을 찾아보던 차에,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전체 시리즈 7권을 단돈 3,500원에 팔고 있었다. 무척 싸기도 하고 아무래도 종이의 질감으로 만화를 보는 것을 좋아해 바로 결재했다. 역시 가격이 싸서 그런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지만 애장판을 구매할지 안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구석 한편에 쳐 박혀있던 읽다 만 책을 다시 꺼내 보는 맘으로 읽고 있다.


최종병기 그녀 중고 만화책 & 피규어(치세)는 이미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구매


  읽다 보니 더 궁금한 게 많아지고 검색하고 관련 유튜버 동영상을 이것저것 보게 되었다. 또, 보다 보니 영상 추천 로직에 따라 다양한 주제별로 추천해주는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영상까지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최근에 잘 보지 못했던 애니를 비롯하여 아예 이런 애니가 있는지 조차 몰랐던 것들까지... 실로 방대했다. 

 

 휴~ 보고 싶은 콘텐츠가 너무 많은데...


 재미있는 게 많아서, 볼 것이 많아서 좋은 게 아니라 세상에 수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다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쉽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부족한데 저 많은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가 어려운 문제이자 고민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갑자기 옛 만화에 꽂혀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책,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TV 프로그램, 게임 등등 활자는 활자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매체와 플랫폼과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쏟아져 나온다. 2018년 국내에서 신간으로 발행된 종수는 56,809권이었다고 하니, 한 두 개 영역의 숫자만 찾아봐도 어마어마한 수가 아닐 수 없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인구가 많으니 그 무엇이든 많아지는 게 당연하지만 개인으로 한정하면 소화 불가능한 과잉이다. 그 어떤 장르의 콘텐츠도 하루에 하나씩 소비를 한다고 할 때 1년에 고작 365개뿐인 것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또, 그 콘텐츠를 분석하고 있는 브런치의 글이나 블로그 등을 포함해 연관 기사들까지 본다고 하면 이건 마치 시지프*와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소비하면 또 소비해야 할 콘텐츠가 나타나는 꼴이다. 아니다. 시지프는 돌덩이 하나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는 동일 행위의 반복(1대 1 치환)이지만 콘텐츠는 1개를 읽으면 연관된 것이 N개가 될 수 도 있다. 1개로 시작하여 봐야 할 것이 차곡차곡 늘어나는 것이 어쩌면 피보나치수열 인지도 모른다. 피보나치 수열이 자연의 섭리와 창조를 담고 있는 수열이라고도 하는데 콘텐츠의 확장과 연결은 새로운 것의 창조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다. 

해바라기 꽃의 시계방향 나선(54개)과 반시계 방향 나선(34개) 수가 피보나치수열을 이룬다. (출처: pixabay)

 어쨌든  f(n) = f(n-2)+f(n-1) (n>2 일 때)만큼 늘어나는 콘텐츠의 확장을 다 소비할 수는 없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소비행태는 무엇일까? 혹은 나에게 맞는 소비는 무엇인가라는 다소 엉뚱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고민에 도달했다.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시간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그래서 남들이 많이 하는 것 혹은 인기 있는 것을 소비하려고 하는 안전지향적 소비가 늘어나게 되고, 또 스스로를 내세우기에도 트렌드를 따라가기에도 그 방법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이런 기조는 신뢰기반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다양화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인터넷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면서 개인화 추천이라는 서비스적 또는 기능적 화두는 지속적이면서 더욱 중요시되었지만 완결적이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기술적 진화와 맞물려 유튜브의 추천과 같이 각종 Web, APP 서비스 내 추천 알고리즘은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할 수는 없다. 추천을 통해 내가 갖고 있는 유한한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착각이 들뿐 원천적으로 시간 부족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적어도 난,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택하리라.





* 세카이계(世界系)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해석과 변형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히로인(보통 여성 캐릭터)의 두 관계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서사는 부족한 상태로 바로 세계의 위기와 같은 중대한 문제로 직접적으로 직면하고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 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데, '에반게리온'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 특정 카테고리나 주제 안에서 Top 3을 정확하게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가 Top 3을 고른다면 1위 - 에반게리온 OST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 テーゼ), 2위 - '최종병기 그녀' Ed '안녕'(さよなら), 3위 - 시티헌터 1기 OST '사랑이여 영원하라'(愛よ消えないで)를 꼽을 것 같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다들 오래된 애니다.

* 시지프 (시시포스, Sisyphus)로 신화에 따르면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는데 바위를 올려놓으면 다시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는 무한한 반복 형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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