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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Oct 23. 2020

추억의 오락실

50원의 간절함

 몇 년 전부터 레트로 열풍이다. 유명한 TV 드라마 시리즈부터 과거에 주목받지 못했던 가수의 재등장까지. 실로 8~90년대의 패션, 문화, 장소(건물) 등 사회 전반에 젊은 감성이 더해져 재생산되고 다양한 연령층에 소비되고 있다. 레트로가 10~20대에게 뉴트로이자 최신의 트렌드가 되는 요즘,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겐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 같아 꽤 즐겁다.


 과거를 추억하면 떠오르는 것이 적지 않지만 그중에 가장 그리운 것은 국민학교 때 드나들던 오락실과 큰 오락기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내가 어릴 적엔 국민학교라고 했다. 그 시절, 나는 동네에 있는 오락실에 자주 가곤 했다.


 특히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 5명이 전부 오락실 근방에 살고 있었다. 동네가 비슷하니 금방 친해져 어느 날부터인가 으레 매일 같이 오락실에서 모여 한 판하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오락실은 집 근처의 아파트 진입로에 있는 작은 건물 1층이었다. 창문에 색색의 셀로판지로 창문 하나마다 오락실 글자가 한 글자씩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글자 아래엔 두뇌계발, 지능 향상이라는 홍보문구가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 벽으로 대략 20여 대의 오락기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구석 한쪽으로는 오락실 주인아주머니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작은 방과 간이 부엌도 별도로 있었다. 아줌마는 방 문턱에 걸터 앉아 아이들에게 동전을 바꾸어주었다. 아줌마는 키가 작고 왜소한 편으로 늘 무표정하여 감정이 잘 드러내지는 않는 인상이었다.

 

 평범한 인상과 달리 주인아줌마는 그곳의 권력자이자 법이었다. 형이나 누나의 회수권을 슬쩍해와 내밀면 한 장에 100원으로 환산해 돈으로 돌려주었다. 아줌마의 기분이 괜찮아 보일 때 슬며시 40원을 내밀면 50원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우리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오락실에서의 경제적 물물교환을 체험했고 동시에 에누리와 덤을 배웠다.


 오락실은 내겐 또 다른 세상이며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아침에 모이는 친구들은 나의 게임 동료였다. 어떤 오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동료의 기준이 달라졌다. 좋은 동료라고 해도 막상 2인용 오락을 같이 하다 보면 서로 좋은 아이템을 차지하겠다고 투닥거렸다. 나는 한 판을 위해 수없이 갈등했다. 친구 중 누구와 곤두라*를 같이 할 것인지? 매번 같은 곳에서 죽는 나의 죽마고우 K와 함께 할지 아니면 하나 남은 동전으로 최대한의 효용가치를  낼 수 있는 다른 동료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흥미와 재미만 가득했던 오락실이었지만 어쩌면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한 배움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2년 전 생일을 맞아 오락기*를 하나 얻었다. 몇 달 동안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측은해 보였는지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주었다. 처음에 사려고 했던 모니터가 있는 축소판 정식 오락기가 아니라 조이스틱 형태의 작은 기기였다. 가격도 더 싸고 공간을 덜 차지하는 점은 좋았지만 TV와 연결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TV와 게임기를 연결하면 거실은 나만을 위한 오락실이 됐다. 특히, 과거 오락실에 만났던 게임이 모두 들어 있었다. 수로만 따지면 몇 백 개가 족히 넘었다. 다만, 문제는 무척 갖고 싶었던 오락기인데 불구하고 TV와 연결하는 것이 아주 귀찮은 일이었다. 실제 연결해 게임을 한 건 열 번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50원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서 인지, 함께하는 친구들이 없어서 인지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예전과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오락기를 사기 전, 사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까 말까를 망설이던 때가 훨씬 더 즐거웠고 행복했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답다는 뻔하디 뻔한 문구가 떠오른다.




* 곤두라: 당시 오락실에서 인기가 많았던 2인 용 횡스크롤 슈팅 액션 게임. 콘트라, 콘두라, 곤도라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정확한 명칭은 ‘콘트라(Contra)’로 니콰라과 반군의 이름)

* 월광보합 조이스틱형 오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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