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여행지 좀 추천해주세요! (1)

첫 유럽 배낭여행 - 스페인 바르셀로나

by 회자정리

세 번째 직장을 옮겼을 때다. 오프라인 사업이 주였던 회사에서 온라인 기반 회사로 이직했던 터라 업무 적응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그렇게 입사 후 몇 개월이 흐르고 적응이 끝났을 때쯤, 갓 입사한 직원의 사수 역할을 해야 했다.


요즘처럼 멘토, 멘티로 서로 관계를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업무를 하다 보니 H군은 자연스레 나를 '사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가끔 '사수'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당시, 나는 대리였고 그는 신입이었으니 그런 관계가 성립되었던 건 당연했으리라. 이후, 팀장과 팀원으로 한 팀에서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간혹 쓰던 '사수'라는 표현 대신에 팀장님이라는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후 나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고, H군은 닷컴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또 그는 얼마 후 친구들과 자영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의 도전은 늘 진행 중이었고, 지금도 변함없는 듯하다.


가끔, 그런 H군을 만날 때마다 그는 나를 여전히 '사수'이자 팀장으로 대해준다. 팀장이라는 표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듣는 호칭이다 보니 어색하지 않은데, '사수'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호칭이 갖고 있는 의미로 인해 약간 부담이 되기도 한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나를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여전히 그런 호칭으로 나 자신을 자극시켜주는 H군을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 했던 때의 일이다.


요즘 딱히 친구들하고 여행도 재미없고, 막상 가려고 하면 갈 때도 없고 그래요.
저의 '사수'이신, 팀장님은 여행 많이 다니셨으니 어떤 곳이 좋았어요?

[출처: pixabay.com]


질문 자체는 간단했지만, 그냥 인상 깊었던 곳을 떠올려보고 간단하게 부연 설명을 해도 될 만한 질문이긴 했다. 하지만 '사수'라는 별칭으로 질문을 받으니, 괜스레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한 곳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려웠고, 내 삶을 가끔씩 자극시켜주는 상대이자 또 내가 한 때 '사수'로서 그를 이끌었던 입장에서 단순히 좋았던 여행지가 아니라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곳이길 원했다. 생각이 많아지니 수많은 여행지 중에 한 곳을 고르는 것이 더더욱 간단치 않았다. 바로 답하지 않고, 생각해보고 메일 회신을 주겠다며 약속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어디가 가장 좋은 곳일까?라는 생각에 빠졌지만, 여행이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감정으로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더하여, 많은 부가 조건들에 따라 만족의 정도가 달라지니 상대에 가슴을 꽤 뚫을 만한 답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니, 명쾌한 답을 주었다. 남에게 추천할 단 한 곳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나에게 의미 있었던 여행지와 그 의미를 설명해 주면 듣는 이도 분명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에 대한 답변이 상대에게도 유효할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 의미 있는 여행지를 추천해 본다. (실제 H군에게는 며칠 후 메일로 세 여행지와 이유를 보냈었다.*)



#1. 스페인 - 바르셀로나


대학교 시절, 태어나 처음으로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나갔다. 당시 대학생 사이에 유럽 배낭여행이 붐이었고 다들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기본으로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때였다. 사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딱히 여행이라고 해봐야 수학여행이 다였기에 해외여행은 정말 기대가 되는 것과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이국이라는 기대와 걱정 그리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두려움. 닥치면 어떻게든 소위 바디랭귀지로 다 통한다고 하지만 국제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만 한 가득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호텔팩이라는 상품이었다. 호텔팩은 비행기와 호텔만 정해진 상태로 가는 자유여행이지만, 적어도 일정 인원이 모여서 떠나는 상품으로 주요한 이동에 그룹이라는 안정감이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나 도착한 영국 공항에 내려서 시내로 들어오면서 눈앞에 펼쳐졌던 풍경과 사람, 심지어 그냥 길거리의 유명세 없는 일반 건물 조차 그 모든 것이 다 설렘의 대상이었고 흥분의 트리거(trigger)로 다가왔다. 배낭여행의 시작이기도 했고 모든 것이 신비로와 첫 도착지 영국에서부터 연신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름 카메라는 낭만과 기다림의 미학이 있었지만 여행의 기억을 보존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필름의 수는 한정적이었고 기억 역시 완전치 않으니 그 시절 유럽의 주요 스폿 정도가 생각날 뿐 기억이 희미해진 것이 너무 많다. 어쨌든 여행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하루하루가 더해질수록 유럽의 건물과 풍경에 그리고 여행이라는 특별한 일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 것이다.


1616922821559-75d1f769-28ba-466e-b263-5f34b13b3ccb.jpg 길 건너 직접 찍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사람이 스쳐 지나감)


한 달 동안, 다녔던 나라가 10여 개 정도였는데, 그중 단연 으뜸인 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배낭여행 일정의 약 사분의 삼을 지나 이질적으로 보이던 모든 사물들이 하나, 둘 익숙해질 즈음 만났던 가우디 건축물의 실체는 그간 봐왔던 건물에 대한 전형을 전부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곡선과 비정형성이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물론이고 가히 파격적이자 충격이었고 동시에 신비로웠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고 조형물이지만 말 그대로 처음 보는 것과 같이 청신함을 넘어 초현실적이었다. 더하여, 그의 건축물 모두는 건축물이 아닌 지극히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품들의 합체와 같았다.




나름 풋풋한 시절,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한 배낭여행은 더 다채로웠다. 모든 게 다 좋았다기보다는 떠들고, 웃고, 즐거워하고, 화내기도 하고, 서운해하는 등 셀 수 없이 복잡한 감정적 교류가 있었다. 초기에는 서로 알아가기에 말이나 행동에 다들 조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친밀감이 쌓이자 동시에 작은 상처와 깊지 않은 오해가 생겨났다.


호텔팩의 장점은 바로 호텔 기준으로 전체 일정만 같을 뿐. 도시에 도착해 스케줄에 따라 동행하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적당한 거리감으로 상처와 오해는 서서히 아물어 갔다. 그렇게, 여행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하나, 둘,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배워 갔다. 그즈음, 만난 도시가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기도 했지만, 스페인에서 우리는 분수쇼를 보기 위해서 모든 멤버가 다 같이 스페인 광장에 모였다. 모든 멤버가 모인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다 모였던 것은 여행 초기 베르사유 궁전이었는데 그 이후는 전체가 다 맞는 여행 스케줄은 없었던 것 같다.


스페인 광장에 함께 모여 보게 된 분수쇼는 그야말로 흥분 그 자체였다. 분수쇼의 화려함은 시선을 뗄 수 없었고, 음악은 모두의 가슴을 뛰게 했다. 흥분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갖고 있는 서로에 대한 하찮은 감정마저도 소멸시켰고 그때만큼은 우리 모두가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된 것만 같았다.


buildings-6109847_1920.jpg 바르셀로나 분수쇼 - 몬주익 언덕 [출처: pixabay.com]


그 순간으로부터 20년이나 넘게 지난 지금. 모두와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기도 하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 이제는 다들 각기 가정을 꾸렸고,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중년이 되어 버린 그, 그녀들. 평생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삶을 공유하고 추억을 함께하는 친구인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바르셀로나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의 절반은 가우디와 그의 건축물 때문일 것이고, 나머지는 바로 그때 친구들과 함께 한 감정과 기억일 듯하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는 가장 인상적이었고 동시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여행지 중, 첫 번째 장소다.


도시의 화려함과 건축물만으로도 추천할 만한 곳, 그리고 젊은 청춘의 추억이 함께하여 더할 나위 없는 나의 20대 시절, 그래서 더 아름다운 도시였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P.S. H군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뽑힌 여행지 중 하나는 생애 첫 배낭여행의 도시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갖는 특별함은 대체할 것이 마땅치가 않다. 따라서, 내게는 특별했듯이 누군가에게도 저때 저 감성의 여행이 되려면 아래 조건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첫째, 대학생. 둘째는 적어도 유럽은 처음 여행을 온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20대 일 것. 적어도 이 세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는!! 저 조건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그때를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라도 갖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 브런치를 통해서 다시 쓰는 추천 여행지로는 기존의 추천했던 세 장소에 하나를 더 해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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