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그렇지만 혼자 하면 괜스레 외롭고 심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나는 여행을 갈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말동무가 있어 심심하지 않고,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같이 결정할 수 있고, 길을 잃었을 때는 서로가 의지할 수 있고, 혼자 보다는 식당의 제약 없이 먹는 것이 자유롭고... 등등 혼자보다는 확실히 둘이 더 좋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모든 여행은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런데, 재 작년 봄에 결혼 후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여행 일정이 맞지 않은 데다가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로 한창 숨 가빴던 호흡이 잦아들 때쯤 어렵게 얻어낸 안식휴가였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리프레쉬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제주도 2박 3일의 짧은 코스로 홀로 떠났다.
제주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올레길 걷기.
이틀 반 동안의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제주도에서 홀로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파도 소리와 바다의 짠내를 맡으며, 걷는 그 길의 모든 것이 봄날처럼 포근했다.
제주 올레 7코스를 걸으며...
올레 7코스를 걸었던 날은 딱 3만 보를 걸었다. 아침일찍 일어나 근처에서 몸국을 먹곤나서 피규어 박물관을 후다닥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야 렌터카를 반납하고 버스에 올라 타 올레 7코스 시작점인 송이 슈퍼를 향했다. 1시 즈음 시작해 중간에 커피도 한잔 마시며 걷다 보니 해가 막 졌을 때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다 와 갈 때쯤은 슬슬 무릎이 아플 정도였으니, 무리이긴 했었나 보다.
그렇게 조금 무리하게 걸었지만, 도시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간 때우듯 러닝머신을 걷고 뛰는 반 강제적 운동과 달리 자연에서 숨 쉬며 걷는 것이 무작정 좋았다.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생각 없이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걷는 행위 자체에 묻어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근육통과 무릎의 통증이 있었지만, 호텔에서 유명한 시장 치킨을 포장해 와 홀로 먹었던 치맥은 올레길 한 코스를 걷고 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겐 통증이 훈장이었고 치맥이 보상이었던 셈이다.
다음 날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늘 여행을 오면 날씨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내 없이 혼자 와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잠시, 어제 혹시나 비가 많이 오면 어디를 갈까 하며 찾았던 곳을 향했다.
바로, 비 오는 날 걷기 좋은 곳 '사려니 숲'.
비 오는 날의 사려니 숲길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홀로 걷는 '사려니 숲'길은 지극히 고요했다. 비가 오면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저 길 너머에 회색 빛 안개를 통과하면 이(異) 세계로 들어갈 통로가 있을 듯한 몽환적 분위기였다.
빗물과 만난 숲의 냄새는 낙엽의 향취로 만든 향수와 같았고, 나무, 나뭇잎, 물 웅덩이, 자갈에 부딪치는 빗물의 소리는 자연이 날 위해 연주해주는 음악 같았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달팽이는 서울에서 홀로 온 나를 마중 온 제주 토박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집에서 챙겨 온 조금 작은 우비에만 의지한 채로 걸었다. 빗방울을 나 스스로 마주하며 걸었던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비를 맞으며 걷기는 그 어떤 가림막 없이 자연과 더 친근해질 수 있는 기회였고 예상을 뛰어넘는 편안한 안식이 있었다.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 달팽이 (검색해 보니 동양 달팽이인 듯...)
이틀 동안의 걷기는 순수하게 진심으로 좋았다. '멍 때리듯' 걷는 행위, 머리의 잡념이 다 비워질 리 만무했지만 잠시나마 조용하게 걷기로 한결 머리가 맑아졌다. 특별히,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도시에서 갖고 있던 마음속 쓰레기통을 비운 듯한 그럼 느낌이었다. 비웠으니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될 쓰레기를 별 고민 없이 담을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제주도 올레 7코스를 걸으며 홀로 마주했던 바람의 숨결
언제나 일방적인 정답은 없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내와 떠나는 여행이 당연하고 좋지만, 아주 가끔은 혼자 걷는 것도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에서 혼자 걷기가 좋았던지, 내 귀에는 제주도의 '혼저 옵서예'가 '반갑습니다'가 아니라 어감과 비슷하게 '혼자 오세요'로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