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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Jun 11. 2021

책 좀 읽자!

핑계가 많은 요즘

 작년 혹은 재작년? 예능프로에 출연한 한 영화평론가의 서재가 화면에 나왔던 적이 있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은 대략 2만 권 그리고 만 장의 CD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자 한 패널이 이렇게 물었다. '저기 있는 책을 다 읽은 건가요?’ 


그러자 그 영화평론가는 아래처럼 답을 했다. (정확한 문장으로 옮겨 적음)


‘물론 다 못 읽었죠. 다 읽는 건 불가능하고요.

그런데, 저는 독서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 하는 걸 독서라 생각지 않고,
책을 고르는 과정, 진열하고 꽂는 과정, 서재에 책장을 바라보는 시간 책을 대하는 모든 과정들이 독서라고 생각해요’



 책을 좋아하고, 내 돈 주고 산책은 버리지 않고, 읽을 때 책을 접거나 하지 않고, 낙서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남에게 빌려주느니 책을 사서 선물해주는 쪽을 택하고,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켜켜이 쌓여 있는 나로서는... 저 답변이 소위 내면의 성찰을 통해 얻어 낸 답처럼, '있어 보이는' 답변이었고, 이상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모범답안이었다.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책이 있는 공간에서의 모든 과정 자체가 독서라 하다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또는,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을 보며 다 읽었냐고 묻는 다면 나도 저렇게 대답하리라. 


 어릴 적에는 책을 한 권 집으면 그 책이 이해가 되던, 되지 않던, 무조건 완독을 해야만 했다. 그게 책을 읽는 것이고 독서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이었다. 중학생 때, 나이 차이가 있던 대학생 손위 형제가 읽던 막심고리끼의 '어머니'를 독서실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꾸역꾸역 끝까지 다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책 읽는 것에 대한 완독에 대한 고집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 본격화되면서 서서히 엷어져 갔다. 한해 한해 삶의 반경이 넓게 동시에 복잡해져 가면서 모든 것의 깊이는 옅어졌다. 




 소비해야 할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은 책뿐만이 아니라 그 콘텐츠 하나를 끝까지 다 소화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일종의 좋은 핑곗거리다. 콘텐츠가 너무 많고, 다 소화하기 한계가 있으니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말하기에 말이다. 심지어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책상 위에 쌓여가듯 자리해 높아져만 가는데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한 두 권씩 또 사게 된다. 책을 사면 왠지 조금 똑똑해지는 기분이고 지식이 늘어날 것 같은 막연한 착각 때문일까? 


 책을 읽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딱 잡아 말하기는 어려울 수는 있지만 살아가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책을 조금 열심히 읽기 시작한 시점은 군대 시절 즈음이었던 것 같고, 빌려서 읽는 것이 아니라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서재에 있는 책장 일부


 말했듯이 안 읽은 책이 상당수 있지만, 서재와 거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적지는 않다.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만화책도 다 포함하면 대략 천여 권이 조금 넘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목적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지적 허영심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똑똑해질 것 같다는 착각 말이다. 그래서일까?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간혹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말이야. 어마 무시할 정도로 돈 많은 재벌, 최 정상급 배우의 외모, 세계적인 천재의 비상한 두뇌 중 무엇을 선택할 수 있어.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싶어? 


 그러면 질문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돈을 많이 골랐던 것 같고 그다음이 아마 외모 순이었던 것 같다. 예상했겠지만 그런 영화 같은 기회가 온다면 나는 단언컨대 천재로 태어나고 싶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늘 똑똑해지고 싶고 뭔가를 딱 보면 전체를 다 꿰뚫어 내는 직관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소망을 갖고 있는 자로서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 읽기였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책을 읽다 보니 읽는 책 분야도 넓어지고 좋아하는 작가들도 몇몇 생겼다. 또 어느 순간부터는 읽는 욕심과 함께 소장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고 그 마지막 끝판 왕이 바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들로 올해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욕심과 실력은 별개의 문제. 


 매번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필력들을 보며 좌절하며, 역시 난 그저 취미로서의 글쓰기로 수준이로구나라는 매우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거기에 더하여 수준이 낮으면 응당 책을 읽거나 좀 더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야 할진대, 전혀 그러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심지어 한 달에 소설책이나 에세이지 책 한 두 권 정도 읽는 정도의 체면치레 수준. 그것도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위에서 말한 '독서란 말이야~'라는 핑계로 읽다 말다, 내키는 대로 보고 있다. 


 글도 잘 쓰고, 똑똑 해지고 싶긴 한데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으니... 이런 놀부 심보가 따로 없다. 그래 독서가 책을 읽는 것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가 의미가 있다지만, 그래도 본질은 책을 읽는 것 아니겠는가? 


책 좀 읽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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