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에게 주는 선물

마지막타임 영화 보기

by 엔엘굿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예전에는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강박이었다. 예전에는 비디오를 대여해서 영화를 봤는데 우리 집 바로 옆에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유행하는 구독경제의 원조인 것 같다.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 공짜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 덕에 매일 비디오 가게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볼 수는 없지만 넷플릭스덕에 너무 쉽고 편하게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넷플릭스는 집중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아무래도 집이다 보니 방해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나는 극장에 간다. 영화는 마지막 타임. 마지막 타임에 영화를 봐야만 사람도 적고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정말 집중이 잘된다. 단점이 있다면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끝나는 시간은 다음날 새벽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어제도 나는 컴플리트 언노운 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개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러닝타임이 141분이기에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밥딜런에 대한 영화고 음악이 주제이기에 꼭 극장에 가야 한다는 강박이 되살아 났다. 특별히 나는 밥딜런을 미국의 팝을 주연배우인 티모시 살라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스치듯 검색하듯 개봉영화를 습관처럼 검색하다 "A Comlete Unknown(컴플리트 언노운)" 을 발견했고 바로 근처 영화관 마지막 타임을 예매했다. 10시 시작이어서 다음날 0시 30분쯤 끝난다. 긴 런닝타임을 이기기 위해 과자와 음료수 빵 등을 사서 극장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좌석은 오른편 앞에서 3번째에서 4번째다. 과거에는 맨 앞 중간에서 보는 걸 좋아했는데 화면이 점점 커지니 목이 아프다는 생각에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 목과 자세를 살짝 왼쪽으로 돌려 보는 것이 편하다는 오래된 습관에서 결정한 것이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사가지고 간 과자와 음료를 다 먹어 치울 때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간단하게 술 한잔하고 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극장 안에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만 있기에 어느 위치의 사람이 곤히 주무시는지 안다. 영화는 끝났고 141분의 런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금방 갔다. 일어나서 나가는 길에 곤히 잠든 분을 슬그머니 쳐다봤다. 피곤이 풀린 얼굴이었다. 그분은 영화를 어느 정도 기억하실까?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해 봤다.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오는 건데 딥슬립을 하고 가는 사람들의 느낌이란 어떤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니 20년 전에 심야영화라는 것이 있었다. 밤새 3편을 연달아 보는 영화관이었는데 나 역시 간단하게 한잔하고 영화를 보러 갈 때가 많았다. 1편까지는 잘 봤는데 2편째부터는 기억이 잘 안 났다. 그래도 나는 코는 안 골았는지 옆에 같이 보러 갔던 친구가 나를 깨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같이 갔던 친구도 내가 잠들 때쯤 같이 잔 게 아닐까?


하여튼 오늘 나는 또 나에게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준다는 의미이다. 나는 사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좀 보는 편이다.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배려가 아니었다. 그냥 주관성이 없는 객관적 인간으로 오래 살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요즘 내가 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 가볍게 즐기면서 나에게 선물하는 것을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 타임 영화관람이 그중 하나다. 이런 소소한 선물을 나에게 하면 그냥 기분이 좋다. 마지막 타임 영화관람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 순간을 푹 즐기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서 선물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안의 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