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에서 느낀 전우애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별히 가리지도 따지지도 않고 싸구려 음식부터 비싼 음식까지 그냥 먹는 것이 좋다. 잠자기 전에도 배가 고프면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그렇다고 먹방을 찍을 수 있을 만큼 잘 먹지는 못한다. 하여튼 소화도 잘 시키고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도 없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편식을 해본 적도 없고 반찬 투장을 해본 적도 없다. 그냥 김, 계란라이,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고기가 있으면 고기반찬으로 맛있고, 나물만 있어도 나물 반찬으로 맛있으며, 라면만 있어도 아주 콧노래를 부르며 먹어치운다. 언젠가 나의 이런 식성에 스스로 의문이 생겨 면밀하게 부모님을 관찰해 봤다. 아버지는 약간의 편식을 하시며 반찬이 입에 안 맞으시면 잘 안 드신다. 어머니도 오일릭하고 느끼한 음식을 못 드신다. 형은 정말 편식이 심하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왜 우리 집 식구들과 식습관이 다른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느끼하건, 기름지건 싱겁던 짜던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다 먹는다. 빵도 좋아해서 그냥 식빵을 토스트기에 굽고 아무것도 안 바르고 구운 식빵만 먹기도 한다. 그냥 구운 토스트의 고소함만 온전히 느끼며 먹기에 나는 만족한다. 그래서 나는 뷔페를 좋아한다. 퀄리티가 있는 호텔뷔페도 좋고 가성비를 따지는 뷔페도 좋아한다. 나처럼 관대한 입맛을 가진 사람이 정말 다양한 음식의 향연인 뷔페를 싫어할 이유가 정말 하나도 없다.
얼마 전 나는 가족의 조촐한 파티를 위해 동네 뷔페에 갔다. 온전한 뷔페 음식을 먹기 위해 점심은 건너뛰고 가족들은 차를 타고 오라 하고 나는 1시간 전에 집에서 걸어왔다. 그래야 뷔페음식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계산법이다. 드디어 먹게 되었고 코스를 둘러봤다. 어떤 음식부터 먹을지 순서를 생각했다. 특이한 점은 그 뷔페음식점은 시즌특별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곳이 가장 핫한 곳이었다. 시즌 전에는 계절과일이 있었는데 딸기였다. 생딸기가 나왔고 그 옆에는 딸기케이크, 딸기 쉐이크 등등 다양한 딸기 관련 음식이 함께 있었다. 나는 단번에 나의 집중 공략 1번 대상을 이곳으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즌음식을 먹는 코너의 생딸기가 나오면 바로 개눈 감추듯 사라져 버린다. 시중 딸기가 비싸고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숫자가 압도적 비율로 높기에 그런 것이다. 면밀히 관찰해 보자 딸기 마니아인 것 같은 한 어린 소녀가 생딸기가 나오면 1/3을 쓸어가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은 줄 서기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그 어린 소녀는 딸기가 나오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먼저 줄서고 나오는 생딸기를 마구 퍼가며 독점하고 있었다. 한번에 두 접시씩 가져갔다. 나오는 딸기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그 어린 소녀가 나오는 시간을 계산해 가장 먼저 줄서고 두접시씩 가져가니 생딸기를 좀처럼 먹을 수 없었다. 그 어린 소녀는 나처럼 모든 음식들에 관대하지는 않았고 그냥 딸기만 죽어라 먹고 있었다. 나는 먹을 것을 좋아해 다른 모든 음식에 "헤벌레" 하고 있었기에 그 어린 소녀와의 딸기 경쟁에서 절대적 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딸기는 포기하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모든 음식들을 적절히 먹어치웠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기한 딸기생각이 간절했다. 생딸기 코너를 살펴봤다. 아직도 그 어린 소녀는 의기양양 두 접시를 들고 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이기적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음식을 특히 뷔페에서 이타적인 건 너무나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마음껏 먹으라는 자유와 탐욕이 허락된 공간이지 않은가!
딸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소녀와 경쟁대신 그 소녀를 따라 하기로 했다. 다른 모든 음식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에 나 역시 딸기만 죽어라 패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 어린 소녀만 관찰했다. 줄을 서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나 역시 일어났다. 그 어린 소녀 바로 뒤에 섰다. 그 소녀는 의기양양 두 접시를 손에 들었다. 나는 그래도 어른 아닌가! 어린 소녀처럼 두접시에 딸기를 가득 담으면 정해진 생딸기 숫자로 거의 동이날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접시만 먹기로 했다. 나는 다름 음식들을 이미 먹었기에 그 정도로 만족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나 역시 한접시 가득 딸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만족스럽게 딸기를 먹고 또 그 어린 소녀를 관찰했다. 그 어린 소녀도 딸기를 잔뜩 먹고는 적절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일어났다. 나역시 그대로 따라해 그 소녀 뒤에 또 줄섰다. 또 성공했다. 그렇게 3번을 하니 이제 나의 배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배가 부르니 그냥 마냥 좋았고 행복했다. 그 소녀를 다시 봤다. 그 소녀도 더 이상 딸기를 탐하지 않았다. 정말 온전히 딸기로 배를 채운 것 같았다. 그 소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동질감이란 이런 건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가족들 모두 배불리 먹고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 소녀 역시 집에 가려는 듯 일어났다. 나도 걸어 나왔고 그 소녀도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왔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소녀 역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눈인사하듯 살짝 웃었다. 종종걸음으로 그 소녀는 내 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게임에서 이긴 전우애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은 미소가 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런 나를 보고 있는 가족들은 배부른 돼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