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서 많은 물건을 배송받았다. 배송받은 물건은 무게가 상당히 많이 나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에 배송해 주시는 기사님이 힘들게 물건들을 내려주셨다. 나도 열심히 기사님을 도우며 물건을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본의 아니게 기사님께서 대부분의 물건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순간 너무 미안했다. 그냥 그때 전화가 온 것뿐인데 꾀를 내어 일부러 일을 안 하려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배송 아저씨는 괜찮다는 얼굴로 웃으셨다. 그냥 마음이 불편해 무엇이라도 그분을 돕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순간 배송기사님 트럭 앞에 불법정차 경고 안내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스티커라도 떼어 주고 싶었다. 손으로 스티커를 만져보니 아주 단단하게 붙어있는 듯 잘 고정되어 있었다. 머쓱해졌다. 배송기사님과 눈이 마주치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서 이거라도 떼어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배송기사님은 정말 크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하셨다. "아 사실 자주 배송 가는 아파트의 불법 주정차 스티커입니다. 일부러 붙여둔 거예요" "아침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정말 자주 가야 하는 곳이거든요" "그 아파트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스티커가 없으면 차 빼달라고 전화가 계속 와요" "그 스티커가 있으면 그냥 전화도 안 오고 아무 곳에 세워도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그 기사분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창피하지만 먹고살려고 그런 거예요!" 정말 한눈에 딱 들어오는 노란색 빨간색 불법주정차 경고 스티커였고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의 혐오의 상징 같은 거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먹고살기 위한 부적 같은 거였다. 아주 성실하신 기사님의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있었다. 그 주름 역시 먹고살기 위한 거였고 손등에 보이는 깊이 파인 흉터도 먹고살기 위한 것이겠지. 아직도 방실 방실 웃고 계시는 기사님의 얼굴은 먹고살기 위해 일부러 연습처럼 짓고 있는 표정 같은 거겠지. 먹고산다는 건 그런 건가보다. 먹어야 사는 거고 살기 위해 먹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일도 싫은 일도 먹고살기 위해서 한다. 싫어도 웃고 좋으면 더 많이 웃고 슬퍼도 웃고 아파도 웃는다. 그 웃음은 먹고살기 위해 연습처럼 보이는 이미지 같은 거겠지만 사실은 그 이미지 안에는 다양한 상징들이 들어있다. 오늘 내가 먹고살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여러 가지 표정으로 기사님의 얼굴을 봤고 기사님께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었다. 그리곤 기사님께 말씀드렸다. "센스가 짱 입니다!" 기사님도 그 소리를 듣고 크게 웃으셨다.
그런데 그 웃음이 왜 슬프게 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