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에릭슨의 NLP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NLP는 4명의 천재적인 심리치료사 & 심리학자들을 모델링하여 탄생한 학문입니다(그레고리 베이트슨, 프리츠 펄스, 버지니어 새티어, 밀턴 에릭슨).
하지만 저희 연구소에서는 그중 밀턴 에릭슨의 철학과 사상을 핵심 축에 놓고 NLP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NLP의 두 창시자 중 리처드 밴들러는 컴퓨터 공학자였고, 존 그라인더는 언어학자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정리한 NLP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기능적 요소들의 집합으로 파악하고, 그 패턴을 추출하여 활용함으로써 프로그래밍과 해킹이 가능하다는 논리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지요.
그렇다 보니 기존에 NLP 스킬들이 활용되는 방식들은 다분히 이공계적 마인드 & 고성과 고효율 추구 & 미국적 낙관주의의 면모를 보입니다.
가령 기분이 우울하고 의욕이 없다고 하면.. 그 상태를 각종 기법들을 사용하여 파괴하고, 힘이 넘치고 즐거운 상태를 불러내어 그것을 고정시켜버린다든가(앵커링)..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고민 중인 친구에게 '넌 우유부단한 게 아니라 신중한 거야.'와 같은 식으로 말해주어 성급한 리프레이밍을 시도한다든가 하는 식이지요.
이러한 접근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제 상태' 또는 '싫은 마음'을 일방적으로 제거하고 관계를 단절하는 식의 접근은 당장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준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외면된 마음은 억눌릴지언정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에릭슨이 행한 작업들 역시 겉으로만 놓고 보면 문제 상태를 일방적으로 해체해버리고 단절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케이스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슨의 케이스에서는 마음들이 억눌렸다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결과를 볼 수가 없는데요.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인간의 마음과 그 경험을 바라보는 에릭슨의 시선에 있습니다.
에릭슨은 누군가의 '문제 상태'를 분리시키고 '해결 상태'를 일으켜 세울 때, '문제 상태'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해결 상태'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태도를 갖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마음은 옳고 저 마음은 그르다, 이 경험은 우월하고 저 경험은 열등하다는 식의 위계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며, 모든 마음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긍정하며 바라보는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시선은 겉으로 드러나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위력이 쉽게 간과되지만, 실은 가장 크리티컬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선의 질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이해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것은 중요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을 싫어하거나 나쁜 것으로 판단하여 그렇게 바라보며 접근할 경우에는, 그 마음과 접촉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싫은 것, 혹은 나쁜 것, 열등한 것으로 '파악이 끝난 채'로 거리두기를 하며 바라보는 시선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 닿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 그 마음에 접촉한다면 그로부터 얻을 수 있게 될 막대한 양의 정보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앞에 놓인 마음을 판단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그 마음에 대해 무지하게 됩니다. 이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자연 그 마음에 호기심이 일게 되고,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다가섬과 접촉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미 판단 내린 채 다가가는 시선은 거리두기와 단절을 경험케 합니다. 반면 판단 없이 다가가는 시선은 접촉과 연결을 경험케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접촉과 연결이 가능해야만, '상대방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만나라'는 에릭소니언의 기본 원칙을 비로소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릭슨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접촉함으로써 그로부터 정보를 얻고 배웠으며, 실제 접촉으로부터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이 경험될 수 있도록 적절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입니다. 그 전략이 때로는 전통적인 최면 작업이었던 경우도, 혼란과 역설을 활용한 기발한 방법이었던 경우도, 알쏭달쏭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돌려보내는 식이었던 경우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에릭슨이 어떻게 내담자의 마음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배웠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에릭슨의 기법을 아무리 모방한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글의 앞부분에서.. 우울한 감정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단순 논리로 접근하여 우울한 감정은 해체해버리고 기분 좋고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앵커링을 걸어준다는 식의 접근법이나, 부정적 신념을 긍정적 신념으로 재해석하여 바꿔주는 리프레이밍 등의 작업 등이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는 선입견과 논리에 의해 만들어 낸 데이터에 근거하여 해결 지점을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해 실천하는 경우 = 망亡 테크
→ 직접 접촉을 통해 얻은 실제 데이터에 근거해 해결 지점을 설정하고 전략을 수립해 실천하는 경우 = 흥興 테크
그렇다면 직접 접촉은 어떻게 가능한가? 판단하지 않는 태도. 호기심과 다가섬의 시선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시선'으로 마음과 사물들을 바라보느냐가 에릭소니언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의문은.. 과연 어떻게 하면 그러한 시선을 획득할 수가 있는가? 이것이 관건이겠지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후일 다시 기회를 마련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이미 그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 시선과 더불어 자유로이 늘 새롭게 일어나는 배움에 대해 이곳에서 이야기 들려주시고 함께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 에릭소니언 기본 과정을 무료로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