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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Aug 17. 2022

같은 병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은

대신 아프기와 같이 아프기

대학병원에서 어머니의 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유독 기운이 없고 우울해 보였다. 어떻게든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나 역시 밝을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몸속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않은 상태로 듣는다는 것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부러진 오른팔과 왼쪽 발가락 때문에 절뚝이며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해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이 된 것처럼 우울해했고, 나는 의사의 말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날이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시작하려고 했다. 그전에 누군가의 방문을 먼저 받아버리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머릿속은 암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평생 마주치고 싶지 않던 방문자. 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려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움직인 곳이라곤 집과 택시, 대학병원이 전부였는데 도대체 어디서 걸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손발이 불편하여 벽과 손잡이 곳곳을 붙잡고 천천히 걷느라 그 사이에 손으로 잡았던 무언가로부터 감염된 것 같았다. 열심히 소독을 하고, 손을 씻고, 외출을 삼가도 코로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어머니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눈에 보이는 놈이었다면 박치기라도 한 대 날려주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에 너까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 놈을 욕하는 대신 재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방문해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약을 처방받았다. 다행이라면 나는 음성 판정을 받아 의사를 대면해 어머니의 증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이랄까.


어머니는 대학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다 먹은 후 코로나 약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대체로 직접 하려고 했지만 손발이 불편하다 보니 내 도움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내 방에 따로 격리한 채 시간을 보내려 했고 최대한 어머니와 겹치지 않으려 했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을 완전히 줄일 순 없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음성이 나오니 어머니는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셨고, 나 역시 피부가 예민한 탓에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느라 알레르기 증세가 점점 심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암도, 골절상도, 코로나도 다 내가 대신 걸렸으면 좋았을 텐데 왜 다 어머니한테 가서 고생을 시키나, 그런 생각 때문에 나날이 자괴감이 늘어갔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젊으면 세포가 활발해서 더 빨리 망가질 수 있대."


내가 투덜거리듯 그런 말을 하면 엄마는 한결같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화가 났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매 순간순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나도 코로나 걸려서 마스크라도 벗고 편하게 지내면 좋겠다. 옆에서 챙겨주기도 편하고."

"안 아파야 말이지."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던가. 어머니의 격리 3일 차에 결국 나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약을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원하던 대로 집에서 마스크는 벗어버렸지만, 편하게 어머니를 챙겨주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열이 38.8도를 찍으며 극심한 두통과 오한, 울렁거림 등에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방에 누워 있는 동안 부엌에서 엄마가 왼손으로 내가 먹을 죽을 쑤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망할 코로나.




나는 간헐적인 심장통과 극심한 근육통, 두통, 오한, 오심, 발열 등 상태가 심각했다. 반면에 어머니는 기침이 힘들고, 밤에 열이 오르는 걸 제외하고는 첫날 이후로 통증이 많이 덜어진 상태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암을 돌아볼 새도 없이 코로나와 전쟁 중인 나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내 열을 재고, 죽과 약을 챙기고, 실내 온도와 이불의 두께를 체크하고, 나의 기분을 살폈다. 나는 엄마에 비하면 이깟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새벽 내내 끙끙 앓으며 혼자 울었다. 그래 봤자 밤잠에 든 어머니를 결국 깨우고 말았지만.


코로나에 걸린 기간 동안 38.2도 밑으로 열이 잘 떨어지지 않았고 두통이 너무 심해 인상을 펴지도, 제대로 걷거나 움직이거나 먹기도 힘들었다. 병원에선 119를 부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머니를 혼자 두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 악착같이 집에서 버티다 보니 서서히 열이 내리고 몸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감기 증상처럼 넘어간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나처럼 중증 수준의 고통을 앓을 수도 있고, 어머니처럼 종합적인 질병과 함께 걸릴 수도 있다. 다시는 걸리고 싶지 않고, 내 주변 사람들 역시 절대 걸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남았다.


어머니와 함께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가 들으면 기함을 할 소리지만, 딸인 내 심정은 그랬다. 어머니 대신 암을 옮겨올 수도 없고, 어머니 대신 뼈를 부러뜨릴 수도 없지만, 코로나라는 감염병만이라도 어머니 혼자 고통받지 않을 수 있어서, 내가 바로 옆에서 함께 아파하고,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차라리 감사했다.


예상보다 센 코로나 반응에 어머니를 지나치게 걱정시킨 점은 무척 죄송했다. 그럼에도, 코로나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나 역시 아플 수 있는 사람이어서, 어머니와 같은 병을 앓을 수 있고, 서로의 몸을 챙겨줄 수 있어서, 어머니가 자신의 고통에 온전히 매몰되지 않고 나를 돌아봐줄 수 있어서, 상호 보완의 사랑을 눈물 속에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의 몸과 몸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병에 걸린 일주일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코로나는 사라졌고, 어머니는 다시 어머니 혼자만의 투병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생이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의 투병의 기록에는 늘 내가 함께 할 것이다. 대신 아파해줄 수 없고, 함께 아파해줄 수 없지만, 마음만은 더 많이 아파해줄 수 있기를. 이번 코로나를 통해 그 많은 날들 중에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아플 수 있음에 감사하다.





버려진 밭 어귀에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잡초도 벌레도 아무것도 없는데

꽃만 한 송이 피어 있다

붉은 산 너머에서 넘어온 구름 하나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꽃잎에 매달린 빗방울 하나가

몸을 흔든다

떨어지지 않으려


밤공기 꼬리에 붙어

찾아온 이슬 한 방울


빗방울 하나가

경쾌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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