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외침이던가. 그렇다. 땅 판다고 10원 한 장 나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땅 판다고 행운 하나 솟아나나 봐라!"
그렇다. 땅 판다고 행운이 솟아날 수 있... 을까?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언니의 집에 일주일간 머물고 있었다. 엄마의 물리치료와 언니의 강아지 산책 겸 외출을 할 때마다 엄마는 꼬박꼬박 나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 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 임제. 누가 뭐라 해도 지구 최강 집순이. 언니의 집에는 편안하고 푹신한 침대와 빵빵한 에어컨, 그리고 쾌적한 공기청정기까지 있어 집에 틀어박혀 있기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침대에 누워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거실에서 엄마와 언니가 나갈 채비를 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안 그래도 노곤하던 참에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고 눈을 감았다. 엄마가 방에 슬쩍 들어오는 모습에 나는 냅다 잠든 척을 했다.
"에휴, 데리고 나가려고 했더니."
오늘도 눈치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엄마와 언니가 나가는 소리를 느긋하게 들으며 나는 길지 않을 지금의 자유시간을 어떻게 즐길지 달콤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의 절망적인 비명이 들려왔다.
"아이, 너네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번뜩 잠에서 깨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럴 수가! 자유시간을 즐기려다 그만 진짜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엄마와 언니는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산책을 짧게 끝내고 후다닥 뛰어들어온 참이라고 했다.
"왜 그래?"
"아이, 이거 봐."
엄마가 속상한 얼굴로 방에 들어와 손을 내밀었다. 그곳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작은 식물이 잔뜩 비틀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네 잎 클로버! 배추가 다 뜯었어."
나에게 이르며 입을 삐죽 내미는 엄마 옆에서 배추와 열무가 신나게 혀를 내밀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배추와 열무는 언니가 키우는 푸들의 이름인데 틈만 나면 어디고 주둥이를 들이미는 버릇이 있었다. 산책을 미처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들어온 참에 (전지적 개의 시점에서 보자면) 집 안에 바깥의 냄새를 품은 풀이 나뒹굴고 있으니 일단 입에 넣어본 모양이었다.
"엄마 행운 배추가 먹어버렸네!"
배추와 열무의 발을 닦으며 언니가 깔깔 웃었다. 나도 그 소리에 맞춰 킥킥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배추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신나게 공을 쫓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니가 배추와 열무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이, 발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엄마는 공원의 클로버 밭에 들어가 네 잎 클로버를 열심히 찾았다고 했다.
시골 마당가에 잔뜩 핀 클로버들을 볼 때도, 놀러 간 펜션에서, 길을 지나다, 산책하던 곳에서도 클로버 밭을 마주칠 때마다 엄마는 네 잎 클로버를 찾지 않았다.
"엄마, 행운이 올지도 모르잖아."
"됐어. 행운은 그런 걸로 안 와."
늘 그런 식으로 말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이번에는 옅게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았음에도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먼 눈으로 열심히 클로버 밭을 헤매었을 엄마의 눈이 그려졌다.
무엇이 엄마를 그토록 절실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엄마를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을까.
마음에 얹히는 여러 생각들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해맑은 배추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배추에게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배추는 엄마가 화장실에 가면 쫓아가고, 방에 들어가며 나오라고 멍멍, 열심히 짖어대고, 소파에 앉으면 다리에 기대앉아 뽀뽀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결국 엄마의 입에서도 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배추 네가 최고다!"
엄마의 네 잎 클로버는 이미 배추의 뱃속에서 소화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행운은 배추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배추의 행운이 되었다.
그런 배추가 엄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실실 흐르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는 행운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행운은 엄마의 웃음에, 엄마를 지켜보는 나와 언니의 미소에, 엄마를 사랑하는 주변의 시선들에 섞여 줄곧 엄마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네 잎 클로버를 잃은 것을 서운해하지 않는다. 엄마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밟은 수많은 세 잎 클로버의 행복들이 엄마의 발밑을 든든히 받치고 있으니까. 엄마와 나와 언니가 한 잎씩 달라붙어 서로의 행복을 지켜주는 세 잎 클로버가 되어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