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공원 산책을 나왔다. 날이 좀 풀려서 춥기보단 선선한 날씨였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봄이 올 것 같았다. 봄밤과 오빠라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조합이었다. 얼른 봄이 왔으면! 패딩 안에서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우연히 고객 한 명을 마주쳤다. 동네가 멀어서 여기까지 올 일이 없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곧 휴가 시즌이 끝나서 살짝 울적했는데, 그를 보니 갑자기 마음이 산뜻해졌다. 업무가 시작되면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슥 스쳐 지나갔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멀리, 멀리 걸었다. 오빠와 대화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재밌고 티키타카가 잘 되고 배울 것도 많고 리액션도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격은 다른데 가치관이 잘 맞는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더 흥미롭고 재밌는 것 같고, 가치관이 잘 맞아서 큰 일로는 싸울 일이 없는 것 같다. 어떤 가치관이 잘 맞는 것 같냐면.. 경제적 관점, 부모 자식 간의 관계(어른을 대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마음가짐, 돈을 쓰는 기준, 함께 그리는 미래, 죽음에 대한 생각, 선에 대한 가치관, 자녀 계획, 자유에 대한 의지, 궁극적인 목표 같은 것들! 말로 다 표현할 순 없어도 98%는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래서 설득할 필요나 설명할 이유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 (아 그리고 이건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둘 다 MBTI가 _N_P인 게 정말 좋은 것 같다. N이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자 할 때 둘이 신나서 떠들고, P라 특별히 여행계획을 짜지 않아도 홀가분하게 떠나거나 갑작스러운 일정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다.)
오빠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 맞을 수가 있는 건가 싶다. 마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것처럼 잘 맞는다. 여태껏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만나지 못했던 그간의 세월(2n년)이 살짝 아까울 정도다.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우리가 연인이 아닌 가족이었다면,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 또 우리가 친구사이였다면, 내가 얼마나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 아마 친구라는 미명 하에 몇 달이나 몇 년을 흘려보내다 결국 사귀었을 테지만.
그렇게 네 안을 빙빙 돌아 너라는 산책을 하다 보면. 변화가 필요할 쯤이면 다음의 계절이 오고, 지친 날엔 신선한 바람으로 위로하고, 다 알 듯하다가도 새로운 꽃을 발견하고, 갑자기 튀어나온 동물로 서스펜스를 주기도 하며, 어느 땐 별을 비추고 어느 땐 달을 보여주어 늘 내게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익숙하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길을 걷는 것 같아. 기쁘고 들뜰 때 생각나고 지치고 피곤할 때도 생각나는 너는, 알면 알 수록 아름다운 풍경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