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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May 30. 2024

어디까지 솔직해도 되는 걸까

솔직함의 허용범위




어제는 ‘안’과 저녁을 함께 보냈다. '안'은 햇수로 3년째 보고 있지만 한 번도 사적인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동갑내기 동료다. 또래라고 하면 웬만하면 일단 친해져 보는 내가, 유일하게 친해지지 않은 동료다. 안은 직종이 아예 달라서 그런지 약간의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맛난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향했다. 한참 수다를 떨다, 작년 연말에 내게 큰 상처를 줬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름을 듣자마자 묵혀둔 상처가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안의 전 상사임에도 불구하고 내 솔직한 심정과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무력했던 스스로에게 비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막 났다. "슬퍼 ㅠㅠㅠㅠ" 하며 별안간 울어버리는 나를 보고 아주 놀랬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 미안하오 ㅠㅠㅠㅋㅋㅋㅋㅋㅋ 안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지만, 어쨌거나 이야기해 봐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안은 나름의 방식으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었다. 차분하고 객관적인 말로도 위안을 주는 안이 멋지단 생각을 했다. 하. 간만에 흉터 연고 바르네ㅠ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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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세수를 하며, 화장실 문턱에 선 오빠와 대화를 나눴다. 실컷 떠들고 왔으면서, 왠지 안에게 그 이야길 괜히 꺼냈나 싶은 생각에 어깨가 축 처졌다. 오빠는 새롭게 친해지는 자리에서, 게다가 안과 관련된 사람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낸 부분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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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갑자기 너무 슬펐고 그 이야길 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돌렸어도 눈물이 났을 것 같아. 뭐 안에게 같이 욕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힘들었다는 거잖아(왠지 살짝 삐뚤어짐)."

"잇다야 그래도 안이나 ㅈㅇ이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잇다 이야기에 놀랬을 거야. 그리고 잇다의 세상에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만 안의 세상에선 배울 게 많은 상사잖아. 세계관의 충돌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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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솔직히 나도 다 알아,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 거. 나중에 많이 친해졌을 때나 꺼낼 수 있는 주제라는 거. 다 아는데, 이기적 이게도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 나한텐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군가에겐 일을 배울 수 있는 어른이란 게 속이 뒤틀리도록 안 좋았어. 안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감(알아주길 바라기)보다는, 이런 피해자도 있다는 것. 그 사람이 꼭 좋은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얼마나 비겁하고 못됐는지를 말야.




그래, 내 감정만 생각했던 걸지도 몰라. 다음에 둘이 만나면 꼭 사과해야겠다. 내 생각만 했던 것 같아 미안했고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위로가 많이 됐다고 전해야겠다. 오빠도 같이 고민해 주고 조언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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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오빠와 통화를 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오빠가 이런 말을 했다.

"잇다야, 어제 잇다랑 했던 얘기 다시 생각해 봤는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잇다가 멋지단 생각이 들었어. 보통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가려가며 하잖아. 그런데 잇다는 그런 보이지 않는 룰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멋진 것 같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두려워하지 않는 거. 그래서 잇다가 사람들과 깊숙이, 아주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건가 봐. 그건 잇다만의 특별한 장점인 것 같아."

"거짓말. 오빠는 나니까 좋게 생각하려는 거지?"

"아니야 잇다야, 모르는 사람이 그런 이야길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잇다의 솔직함은 누군가를 해치지 않아. 잇다가 어제 안에게 했던 말은 잇다가 실제 입은 피해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었지, 잇다는 솔직함을 가장해서 상대한테 상처 주는 말 같은 건 결코 안 하잖아(음, 늘 조심하려 하지. 하지만 나도 상처 준 적이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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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신중치 못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빠에게 더 툴툴댔다면, 오늘은 내 솔직함을 하나의 특성으로서 인정해 주는 말을 듣고도 그닥 공감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자리마다 할 말, 못할 말 구분해서 하는 건 응당 그래야 해서 그런 것일 테니. ㅎㅎ 그럼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울의 파도에 휩쓸려 이른 실수를 했다,가 어제 내가 했던 행동을 정의 내릴 수 있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이른 실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언제가 됐든 우리가 얼마나 친해졌든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면 꼭 마음을 표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기 때문에 오빠의 말을 곰곰 되짚어 보면, 나도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거다. 존중은 어릴 때부터 가슴깊이 지녀 온 삶의 태도다(잘 안될 때도 있음. 특히 오빠랑 싸울 때). 마음을 표현했다 한들 안을 존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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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감회가 새롭다. 반성하는 한편 또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는 어디까지 솔직해도 되는 걸까. 그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이 범위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나는 상대방을 어떻게 더 존중할 수 있을까. 답을 찾는 여정이 약간은 기대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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