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잊어
어젯밤이었다. 오빠와 별거 아닌 이야길 나누다 내가 오빠에게 상처 줄 만한 말을 해버렸다. 오빠가 속상할 것이란 자각도 없이 두 번, 세 번, 여러 번이나 했다. 참다못한 오빠가 인상을 찌푸리며 약간 화를 냈다. 다행히 금방 화해를 하는 듯했으나.. 그 이후에 오빠가 괜찮아진 줄로만 알고, 또 그런 얘기를 했다. 당연히 오빠는 다시금 기분이 상했고, 나는 나 때문에 상처받은 오빠를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짜증을 냈다.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다. 핑계지만 1~2주간 심신이 꽤 지쳐있었다. 한두 시간 뒤 이부자리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내가 왜 그런 비수 같은 말을 먼저 하게 됐는지, 오빠의 마음은 어떤지, 또 오빠가 내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나눴다. 주제는 아름다운데 내용은 그렇지 못하게 다소 날카로워 이야기를 마치며 오빠가 속상한 얼굴을 하곤 말했다.
"상처뿐인 대화ㅠ"
뒤의 ㅠ는 오빠의 약간 훌쩍이는 듯한 뉘앙스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오빠의 시무룩한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면서도, '상처'뿐인 대화라는 말에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어서 다소 슬펐다. 적적한 마음을 안고 잠에 들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해서 오빠 손을 꼬옥 잡았다.
새 아침이 밝았다. 서로 퉁퉁거리며 째려보는 건 다투고 난 다음날 볼 수 있는 우리 집 풍경이다. 별 말도 않고 냉랭한 이 와중에도 오빠는 내 점심 도시락을 챙겼다. 어느새 출근 시간. 배웅마저 안 하는 건 정말이지 죄악이라 생각한 건지 우리는 현관 앞에 마주한 적장의 장수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오빠에게 도시락 가방을 받아 들고, 서서히 닫히는 문 너머 심퉁맞은 표정을 한 남자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현관문에 의한 물리적 화면 전환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무사히 화해하는 줄 알았으나 우습게도 내 쫌생이 같은 마음은 다시 벌떡 화가 나버리고 말았다.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몇 번 더 옥신각신 상처뿐인 대화만 주고받다가 종국에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끊었다.
이제 일을 하고자 고객들과 말을 주고받는데, 자꾸만 울적해졌다. 이게 뭔 헛짓거리인가 싶고 오빠가 나땜에 얼마나 슬프고 아팠을까 하는 마음에 속상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쓴 듯한 메뉴로 꽉 차 있었다. 화해의 제스처일까. 사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거센 파도를 맞이하듯 가슴이 울렁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즈음, 오빠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기다란 사과와 함께 다음의 말이 덧붙여졌다.
"이거 보세요 ㅇㅇ로 ㅇㅇ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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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대한 강의 안내였다. 네가 기어코 나를 처절히 반성하게 만드는구나.. 너무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바로 전화를 걸으니 오빠가 귀여운 목소리로 받았다. "여-보-세-여 -ㅅ-" 아마도 이런 표정이었을 테지. 도란도란 속마음을 나누다, 고맙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오빠는 "이제 내 마음을 알겠어?ㅠ"라며 또 어젯밤처럼 약간 훌쩍였다. 눈물 없는 칭얼거림, 네 수많은 매력 중에 하나. 그러다 금방 설움을 잊었는지 밝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오빠였다.
아침 통화 전투를 치렀을 때 지었던 한숨과는 다른 의미가 담긴 한숨이 가벼이 나온다. 오빠, 나 갈길이 참 멀다, 그치? 매일같이 다짐해도 매일같이 까먹는 걸 보면 완전 금붕어인가 봐. 나는 왜이렇게 제멋대로이고 못되고 찌질하고 천방지축인 걸까. 나도 나를 알 수가 없네! 이런 나를 보고도 오늘도 [비니 나쁘지 않고 못된 사람이지도 않아. 비니가 얼마나 착하고 멋진 사람인데!]라고 말하는 오빠는 나보다 더한 찐또배기 금붕어인 것 같아. 오빠, 우리 금붕어끼리 잘해보자. 상처 주고 다툰 건 금방 잊고 사랑의 물속에서 매일 헤엄치자.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내 사랑스런 금붕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