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위로가 된다면
그런 날이 있다. 집 밖의 먼지 구덩이에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집으로 방으로 이불로 빠지고 또 끌려올 때.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겠노라 다짐하고 며칠이 채 되지 않은 어젯밤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저녁까지만 해도 씩씩하던 오빠가, 이부자리에 누워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힘에 부치나 보구나 싶었지만 걱정에 앞서 장난기가 올라와 "이제부터 우리 집은 우울한 사람은 막 밟아! 우울할 때마다 한 대씩이야!"라며 이불을 덮고 누운 오빠의 다리께를 가볍게 밟았다. 퍽퍽 밟는 소리에 오빠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는지 웃다 말고, 갑자기 더 속상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위로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었다. 장난에도 관성이란 게 있는 법이니 조금 더 괴롭히다가 오빠 곁에 바짝 붙어 누웠다. 한 손은 오빠의 가슴 위에, 한 손은 오빠의 머리 위에 얹고 그게 어디든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꿈아, 지금 어떤 게 힘들어? 다 말해봐."
오빠는 자길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나였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하지 않을 고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빠는 꽤나 진지하게 걱정하고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귀여움과 짠함을 동시에 느끼며 오빠의 말을 들었고 다 듣고는 진지한 태도로 해결 방법을 함께 강구했다. 오빠가 가진 고민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고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하니 점차 오빠의 표정이 풀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한시름 놓은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운 한편 오빠가 지닌 마음의 짐을 그간 몰라줬다는 생각에 반성이 됐다. 이제 속이 완전히 풀어진 듯한 오빠가 개구진 얼굴과 애교스런 말투로 말했다.
"비니는 나를 잘 다루는 것 같애!"
사랑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다정하게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어떤 점이 잘 다루는 것 같았어?"라고 물으니 내가 자기 마음을 잘 어루만졌으며 그 덕에 지금은 기분이 완전히 좋아졌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와의 대화가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들뜬 얼굴로 계속 뭐라뭐라 종알댔다. 아아- 귀여워! 이런 똥강아지 같으니라구! 사랑받고 자라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이토록 순진하게 말하니 미소 짓지 않을 수가. 너랑 있으면 내가 반짝반짝 보석이 되는 것만 같아. 아주아주 귀하고 소중하며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네가 내게 그런 존재라 그런지, 네가 내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줘서 그런지. 흔하디 흔한 인간이 아닌, 유일하고도 특별한 하나가 되게 하는 마법, 요술, 주문. 과학이나 숫자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힘. 고작 내가, 고작 이 정도뿐인 내가, 더할 나위 없이 미욱한 내가. 기어코 네 마음에 닿아 널 위로하는 그 하나라서, 나는 정말이지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