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이와 노랑이

by 잇다

퇴근길이었다.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됐다. 몇 주 전, 마당에서 김장을 하던 엄마 곁에 불쑥 누르스름한 고양이 하나가 앉았다. 힘든 김장 작업 내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녀석이 내심 고마웠는지, 고양이를 싫어하던 엄마가 글쎄 김장에 썼던 생선 대가리 몇 개를 던져줬다. 그 후로도 고양이가 찾아올 때마다 엄마 아빠가 먹을 걸 챙겨줬단다. 그랬더니 노랑이와 친하지도 않은, 까맣고 통통한 녀석도 하나 왔단다. 까만 녀석은 노랑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는데, 엄마아빠 말론 노랑이가 까망이를 견제하느라 바쁘단다. 그렇게 친구인 듯 적인 듯 아이러니한 관계의 고양이 두 마리가, 이제는 아빠의 출퇴근 시간을 맞춰 기다린다고 했다. 엄마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고양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아빠의 이런 변화가 무척 신기하다. 원래 불호를 호로 바꾸기보다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니까. 처음엔 사람 그림자만 봐도 후다닥 도망치던 애들이, 이제는 본인을 기다린다며 내심 뿌듯해한다. 아빠가 ‘우리 집이 동물농장이 됐다’며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웃는다. 아빠가 이렇게 순수하게 웃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왼 까망 오 노랑



엄마는 그들을 까망이와 누렁이로, 아빠는 까만 놈과 노란 놈으로 각기 다르게 호칭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 않겠냐며 물으니 엄마가 들뜬 말투로 답한다. “뭐로 할까? 까망이 노랑이?” 뭔가 아이디어를 내기도 전에 엄마는 아이들의 이름을 탕탕 지어버렸다. 완전 걸크러쉬. 엄마는 뒤이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노랑이는 좀 못생겼어. 까망이는 잘생기고 더 똑똑한 것 같아.” 엄마 노랑이 다 듣겠다. 그나저나 노랑이는 별로 노랗지도 않은데 왜 노랑이냐니까 실제로 보면 좀 노랗단다.


한편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부를 때 색깔로만 구분하는 게 아니었다. 어쩔 땐 먼저 들어온 녀석을 첫째로, 다음에 들어온 녀석을 둘째로도 불렀다. 엄마 아빠의 진짜 자식 된 입장으로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마치 자식처럼 첫째 둘째로 불린다는 게 묘했다. 장성한 자식들은 멀리 지내니, 가까이에 정성을 쏟을 곳이 필요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식을 키울 때 들였던 에너지에 대한 관성이 남은 걸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을 알고 있거나 아는 체해야 하는 지난한 삶에, 따듯한 파장이 이는 듯했다. 부모, 배우자, 어른, 직장인 같은 고귀하고도 무거운 삶의 한가운데서 말이다.


엄마아빠 피셜 미인 고양이


“얘들은 물을 안 마시면 오히려 붓는대. 근데 노랑이가 첨 봤을 때 똥똥한 거야. 그래서 물을 많이 줬어.”, “은혜 갚는다고 쥐 잡아다가 오면 난 어뜩하지”, “고양이들은 똑똑해서 밥을 많이 줘도 자기가 배 부르면 그만 먹는대.” 기억 저편에 내버려 두었던 고양이에 대한 조각 지식들을 조금씩 끄집어내는 듯했다. 또 생선이니 고기니 사료니 하며 전화 너머로 현관문을 드나드는 엄마 아빠의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잘 먹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다른 하나가 굶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기분 좋은 분주함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다 커서 제 직장도 있고 결혼까지 한 자식임에도, 자식으로서 평생 부모를 보고 배운다는 것도 느꼈다. 떠돌이 처지에 측은지심을 갖고 세심히 돌보는 자세, 생명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같은 것들.



“엄청 춥겠다 요즘. 어디서 자, 걔네는?”


“그건 모르겠어, 여기 근처에 사는 것 같아.”


“날이 추워서 어떡해.”


“그러니까 말야, 겨울을 잘 나야 할 텐데.

안쓰러워, 이 쪼그만 애들이 그 추위에 밥 먹겠다고

우리 집 앞에까지 와서 기다리는 거 보면.”


“엄마, 묘생도 참 쉽지 않네.

인생만 쉽지 않은 줄 알았더니,

고양이들도 사는 게 쉽지 않겠다.”


“그치, 묘생도 쉽지 않아.”


엄마, 어떤 존재에게든 쉽지 않은 생애지만 서로가 있기에 다시 살아갈 힘을 가질 수 있는 건가 봐. 냥이들은 엄마 아빠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난 오늘 저녁 엄마 덕분에 막 웃을 수 있었어. 또 이렇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줘서 고마워. 엄마 우리 사는 내내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자! 딸이 무지무지 사랑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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