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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Dec 05. 2024

너는 네가 괜찮길 바랄 뿐이야

주기적으로 면담 신청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아니, 주기적으로가 아니라.. 거의 매일. 한번 오면 최소 20분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내게 본인이 자체 진단한 불안장애, 폭식증, 심장 두근거림, 자해 욕구, 자존감 저하, 관계 맺기의 어려움, 외모 강박, 강박증에 대해 호소한다. 매일 두세 개 이상의 진단명을 가지고 오므로, 내 포지션은 늘 위로하거나 공감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흥미로운 건 이 사람은 곧잘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죽지 않고, 자해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자해하지 않고, 폭식증인 것 같다지만 폭식하지 않으며, 잔인한 장면이나 사건을 보기가 힘들다고 말하지만 최근 들어 이 증상은 씻은 듯 나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했고 왕따를 당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 마음의 상처가 깊을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그녀는 한 번도 그녀 자신의 상처를 위로해 준 적이 없었고, 그로 인해 무의식에 묻혀있던 아픔들이 지금의 반쪽짜리 병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쉴 새 없이 증상들을 나열하는 그녀를 차근히 보고 있다 보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오늘은 이런 위로를 건넸다. '사실 당신은 스스로를 걱정하고 있군요, 스스로가 잘 되길 그리고 행복하길 누구보다 진심으로 바라는 거죠, 그런데 그 방법을 잘 몰라 헤매고 있네요.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아직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아요. 설령 진짜 질환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도 잘 다니고 있고 스스로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실천하고 있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기도 하구요.'

내가 왜 그럴까, 나는 왜 이럴까 끊임없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들. 실은 나도 낯설지가 않다. 내 행동과 말과 마음이 이해되지 않고,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던 나였기에 말이다. 정녕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픈 마음. 그래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병명을 찾고 상처와 트라우마에 대해 공부하던 지난날. 부족함을 자책하고 나쁜 말과 행동을 질책하던 지난날. 그리고 얼마 전 adhd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동안의 참을 수 없던 분노와 눈물, 실수, 무신경함이 한 번에 이해가 되며 동시에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그녀를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도, 의사도 아닐 것이다. 오직 그녀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지금껏 의심했던 반쪽자리 질병이 아닌 자신에게 꼭 맞는 병명을 찾아 치료하든, 무의식에 갇혀있던 상처들을 세심하게 보듬든. 그녀가 그녀 자신이 괜찮길 바라는 것만큼, 나도 그녀가 괜찮길, 열렬히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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