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피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 Jun 11. 2024

등산과 인생

인생과 등산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등산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모님을 따라 이 산 저 산 올랐던 나는, 그저 목적지까지 열심히 올라가서 정상을 찍는 그 순간이 재밌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직장인으로서 하게 된 등산은 내게 다른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산을 오르는 데만 3시간 30분이 걸리는 관악산 사당 능선 코스를 오를 때의 일이다. 우리는 서울대 입구역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가볍게 완주하고, 다음 단계의 코스를 물색하던 중 능선 코스를 알게되었다. 해봤자 얼마나 힘들겠어, 등산인들이 2시간만에 오른다던 블로그 후기만 믿고 일단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쯤 올랐을까? 조금 올라갔다 싶으면 내려가고, 이제 진짜 정상을 향해 오르는가 싶으면 또 내려가고. 곧 도착할 것 같던 정상이 보이지 않아서 내려오시는 어르신께 물었다.


"정상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올라가야해요?" 
"멀었어~ 올라온 만큼 더 가야해"

'올라온 만큼 더 올라가야한다고? 나는 1시간 30분을 올라왔는데?'


그 순간, 나와 친구의 눈이 마주치고, 우리 둘은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포기'. 살면서 시작한 일을 포기해야겠다 마음 먹은 경험 자체가 없던 나에게, 그 순간은 굉장히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이미 힘들게 올라왔는데 그만큼 더 올라가야 정상이 나온다니,, 올라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더 올라가고 싶지만 이미 지친 우리 둘은 차마 1시간 30분을 더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포인트에서 다시 내려가더라도 1시간 30분이 걸리고 정상을 찍으면 내려가는 길은 서울대 입구역 방향으로 30분이면 내려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고이 접고 다시 힘차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면서 오른 관악산 능선 코스는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아직 1시간 30분을 더 가야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정말 끝이 안보이는 길이었는데,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친구와 인생 이야기를 하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정상인 연주대에 올라있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등산을 하면서 인생을 배웠다. 너무 상투적인 문구라 생각하겠지만 온 몸으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느꼈다. 


처음에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중턱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을 믿고 목적지를 향해 지치지 않고 걸어가기만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았던 그날의 등산 경험이, 내게 '너 지금 잘 하고 있어. 그대로 쭉 걸어가'라는 용기와 믿음을 주었다. 


아직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직장인이 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금 이 길이 맞나?'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곤 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우리가 결국 관악산 정상을 올랐듯, 내가 서 있는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기만 한다면, 그 끝에는 결국 도착지가 있다. 많은 자기계발서와 힐링 에세이에서 비슷한 말들을 하곤 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 메시지를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아마 내겐 그 순간이 관악산 중턱에서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일상에서 의문이 생기거나 힘들 때, 나는 관악산 등산을 떠올리곤 한다. 과정은 힘들고 의심했지만, 결국엔 목적지에 도달했던 나의 모습을. 지금 내 인생의 어려움도 종착지를 향해 가는 능선의 오르막길 중 하나이진 않을까?    


등산에서 인생의 진리를 얻었다는 말, 너무 뻔하지만 순도 100% 진심을 담은 깨달음의 순간이었답니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에 유익한 등산! 마침 요즘 단풍철이라 산들이 울긋불긋 아름다운데, 가볍게 근처 산을 한번 올라보시는건 어떨까요?! 

미뇽�



에피레터(ep.letter)를 소개합니다

에피레터는 매달 한 가지 키워드를 주제로 현의/미뇽이의 에피소드를 메일로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에피레터 최신호를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무료로 받아보세요.

https://maily.so/journaletter

매거진의 이전글 화(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