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맥플라이, 혹은 마이클 J. 폭스
1961년에 태어난 캐나다 출신 배우 마이클 J. 폭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생 시절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본 영화 <백 투 더 퓨처> 덕분이다. 작고 당찬 청년 마티 맥플라이는 친하게 지내는 에멧 브라운 박사의 일에 휘말리며 의도치 않게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가벼운 오락용 영화로만 생각했던 이 작품이 남다르게 느껴진 건 머리가 좀 큰 이후다. 성인이 돼 다시 만난 <백 투 더 퓨처>는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작품답게 충분히 대중적이지만 구성 또한 탄탄했다. 콜라와 전단지, 에너지원 등의 복선이 영화 중후반부 재등장하며 이야기를 조합해내는 방식은 다시 봐도 놀라웠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것은 마티 맥플라이가 등장하는 신(Scene)이다. 160센티미터 조금 넘는(실제 위키백과에서 그의 키는 163센티미터로 기록돼 있다) 키에도 굴하지 않고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문제를 해결해내는 모습은 당시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난 작고 왜소한 소년이었으니까. 최근 애플TV를 통해 공개된 마이클 J. 폭스의 다큐멘터리 <마이클 J. 폭스: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Still: A Michael J. Fox Movie)>를 보며 먹먹한 감정을 느낀 건 아마 그 시절 내가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키가 작아서 항상 덩치 큰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다는 그의 고백에 나는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험난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을 특유의 통통 튀는 리듬감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개하는 마이클의 말투와 표정에서 나는 존경스러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 맥플라이는 자신을 ‘겁쟁이(Chicken)’이라 부르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 참지 못해서 싸움에 휘말리고 일을 그르친다. 마티가 <백 투 더 퓨처 3>에서 마침내 ‘겁쟁이’라는 말을 참아냈을 때 그의 시간여행도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시간여행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실은 마티 맥플라이가 어떻게 성숙한 인간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성장영화이다.
마티를 동경하면서도 나는 그가 배운 참을성과 인내, 성숙함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중간의 마티처럼 주변을 의식하며 더 크게 화를 내고 분노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키 큰 사내와 부딪치면 먼저 화를 내고 센 척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키 크거나 덩치 큰 사람들에게는 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자신이 점점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마티가 위기를 겪은 것처럼 말이다.
마이클 J. 폭스는 한창 활동하던 1991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초기에는 약을 복용하며 활동을 이어 나갔지만, 증세가 심해지면서 결국 모든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주변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특히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외부와 마주치길 꺼리지 않는다. 부딪치거나 넘어지면, 추스르고 다시 일어날 뿐이다. 영화 속 마티처럼 다큐멘터리 속 마이클 역시 자신의 조건이나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담대하게 운명을 받아들인다. 아파서 운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내가 운다고 세상이 나를 위해 바뀌거나 내게 큰 축복을 내려주진 않으니까. 그저 덤덤하게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제는 마티 맥플라이가 아닌 마이클 J. 폭스를 존경하게 됐다. 자신의 허물을 보여줄 줄 아는 사람, 허물을 밖으로 꺼내놓으며 소통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는 보여주었다. 난 그의 출연 작품을 유난히 좋아했다. <백 투 더 퓨처>뿐 아니라 늑대인간으로 분한 <틴 울프>, 의사로 등장하는 <헐리우드 의사>, 베테랑 호텔리어로 나오는 <사랑게임>, 돈에 흔들리지만 결국 자신을 지켜내는 인물로 등장하는 <상속 작전> 등 출연 작품에서 그는 항상 일관되게 통통 튀는 청춘을 연기했다. 그 특유의 말투와 미소를 사랑했다. ‘언제나 청춘’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물론 그는 영원히 청춘이라 불릴 만큼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하지만 청춘이 아니면 또 어떤가. 제어할 수 없는 몸 때문에 힘들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그렇게 아직 살아 있는데. 굳건히 살아서 다시 또 일어나 걸어갈 텐데, 뭐. 누구나 흔들리고 넘어지고 좌절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시 일어날 수는 없다. 그건 귀한 능력이다. 내가 마티, 그리고 마이클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면 아마 그 능력일 거다. 누구나 훌륭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조금씩 애쓰고 간절히 바라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나 태어나 죽기 전까지 단 한 번을 살아낸다. 두 번 사는 사람은 없다. 그것만큼 공평한 일도 없으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죽을 필요 없다고 자신에게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