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내향인 A
김장훈이 1996년 발표한 3집 앨범에는 '노래만 불렀지'라는 노래가 있다.
슬픈 날에도 하늘 보며
난 노래만 불렀지
언제나 혼자되어 하늘 보며 난 노래만 불렀어
다시 혼자 돼도
난 노래만 부르지
슬픔이 오고 혼자 남아도 무조건 노래만 부른다는 노랫말. 난 글만 쓴다고 해야 하나. 슬프거나 우울하든, 좋은 일이 생기든 일단 글로 쓸 생각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글자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데 익숙했던 내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최근에도 마찬가지. 언제나 혼자인 밤, 남들은 놀러 다니지만 나는 방구석에만 처박힌 주말, 여름 휴가를 갈 수 없을 정도로 바빠서 스트레스가 쌓인 날들 언제든 나는 무엇이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내 글은 언제나 외면당한 채로 사장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없다는 데 절망감을 느끼지만, 잘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쓰고 싶다.
어릴 때부터 재능 없다는 말은 쉽게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밑바닥까지 내려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한 다음에도 잘 안 될 때 재능 없다는 말을 쓰라고, 그 정도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말이다. 몸을 하얗게 태울 만큼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오랜 기간 글을 써왔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시든, 시나리오든. 신춘문예나 문학상에 응모한 적이 없을 뿐 무슨 글이든 쓰고 썼다. 인생을 낭비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형편없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내 자신에게 부끄러울 만큼 나태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중학생 이후 계속 그걸 달고 산다. 그러니 늘어난 것은 열등감과 냉소뿐이다. 어린 나이에 등단한 작가들을 보면 흉을 보거나 단점을 찾는 데 급급했다. 누군가의 글을 따라했겠지, 실력은 없는데 인맥은 좋은 모양이군, 젊은 작가만 선호하는 출판사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야. 졸렬한 생각을 하고 난 후에야 내 마음은 비로소 진정됐다. 그래야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망가지는 건 나 자신이었으니. 내 치졸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과오를 인정하고 깨닫고 난 뒤에도 여전히 쓴다. 글은 평등하다. 잘 쓰든 못 쓰든 글자들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 내 마음속 이야기, 생각들을 '문장과 글'로 구현해주기 위해 애써준다. 그들의 간절한 노력 덕분에 난 매일 일기를 쓰고 에세이를 쓴다. 글자라는 아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들 덕분에 비로소 난 숨을 쉴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글은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린다고 뚝딱 나오진 않는다. 특히 난 시동이 걸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같잖은 일기 몇 줄을 쓰려고 해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고, 이런저런 메모들을 뒤적여야 한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잘하는 척'은 해야 하지 않겠나.
우선 배를 채워보자. 밥값을 아끼려고 집밥과 반찬으로만 식사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피자를 준비했다. 아니다, 실은 어머니가 보내주신 냉동 피자다. 냉동 피자에다 맥주를 곁들여 몸과 마음을 든든히 채우고 나니 비로소 글을 쓸 마음이 생긴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밖이 아닌 내부에서, 내 안에서 동력을 찾는 내향인의 습관이랄까. 여하튼 어떤 상황이든 일단은 '글만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