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인이다.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자리에서는 입을 떼지 못한다. 문제는 그런 내가 항상 '무리'를 동경한다는 점. 무리를 동경하면 용기를 내면 되고 혼자 있고 싶다면 이 생활에 적응하면 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그 매듭을 풀지 못해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걸었다. 사부작거리며 산책하듯 지내면 될 것을. 머릿속 생각과 몸의 행동이 어긋나니 생활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마음으로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몸은 얼어 있었다.
출근길이면 길고양이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잦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안쓰러워 물이라도 줄까 싶어 다가가면 한참이나 멀리 달아난다. 분명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다가오지는 말란다. 그러니 항상 적정거리를 유지할 뿐이다. 네 마음이 어쩌면 꼭 나와 같겠구나. 사람이 필요하지만 달아나고, 달아난 다음에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다시 사람이 다가오면 멀어졌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무언가 연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그래야만 그 무한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인생은 분명 유한한데, 누구나 동일한 종착지로 가고 있는데, 난 이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진다. 땡볕을 정통으로 맞은 한낮의 오후, 놀이기구를 기다리기 위해 한참이나 늘어선 줄의 한가운데에 있다. 여태껏 지내온 시간이 아까워 돌아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도 않은 시간에 내가 있다. 그러면 나 혼자 놀아볼까. 뭐라도 써보자. 이왕이면 글을 연재해보자. 연결성이 있으면 좋잖아. 그런데 무슨 연결성? 그렇지! 나는 내향인이니까 내향인이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히 써 내려가면, 혹시 한국어 글을 해독할 수 있는 지구상 누군가는 공감해주지 않을까? 단 한 명이라도 공감해준다면 영광이겠다. 정해진 테마는 따로 없다. 카페를 갈 수도 있고, 산책을 할 수도, 밥을 짓거나 요리를 할 수도 있다. 어느 내향인 A의 모든 것이 곧 테마이자 주제가 된다.
필요한 것은 아주 약간의 용기다. 퇴근 후 귀소본능을 이겨내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가는 용기, 소파에 누워 있으면 편하지만 그것보다는 무언가를 만들어보겠다는 용기, 에어컨 바람은 천국의 선물 같지만 그래도 굳이 밖으로 나가 산책해보겠다는 용기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