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죄는 아니잖아

by 초생달

b 실장님은 전 직장에서 알고 지낸 분이다. 대화를 깊이 나눈 적도 없고, 따로 만난 적은 당연히 없었으나 항상 푸근한 인상으로 주변을 따듯하게 만들어주셨던 분. 나보다 열 살가량 많아 보였던 실장님은 남편, 아이와 함께 사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그 때문인지 유아 및 아동 관련 매거진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어떤 콘텐츠를 원하고,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회사는 물론 클라이언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근으로 일했던 나와 달리 실장님은 1개 잡지만 맡아서인지, 처음 계약이 그러했는지 비상근으로 때에 따라 출근하거나 재택근무를 했다.


깊게 친하다고 볼 수는 없었으나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면 이따금 실장님께 이런저런 조언을 구할 때가 있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실장님은 그때마다 내게 따뜻한 긍정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진 분이기에 믿음을 가졌으리라. 내가 직장을 옮기고 난 후로는 거의 대화 나눌 기회가 없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인스타그램 친구가 됐고 가끔 서로의 게시물을 보고 근황을 확인했다. 내가 고민이 많아 보이면 실장님은 무엇이 그리 고민이냐며 물었고, 어쩌다 올린 사진을 보고선 왜 이리 말라 보이냐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봐주었다. 주로 우리는 댓글로 소통했다. 그렇게 댓글을 나누다가 안 사실. 실장님이 전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뉘앙스를 보면 스스로 원한 일이라기보단, 나이가 쌓인 직원을 부담스러워 한 회사의 결정 같았다. 요즘 중장년 취업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다며 5060에 대한 수요가 는 것 같다고.


기업은 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당장의 능력이 떨어지고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젊은 사람의 가능성과 총명함을 믿고 싶은가 보다. 40대만 돼도 '노땅', '꼰대' 취급을 받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나이 먹는 게 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성실하게 묵묵히 일해온 것뿐인데. 그 '묵묵히'가 문제였나 보다. 눈치 주기 전에 미리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걸까. 경력이 필요하다는 기업들은 나이가 든 경력자가 아닌 젊고 창의성이 넘치는 데다 경력까지 갖춘 인재들을 원한다. 이쯤되면 그 창의성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새롭다는 거지? 세상의 모든 틀을 깨고 뉴진스와 르세라핌, 덱스는 물론 요즘 트렌드를 줄줄 꾀는 트렌드 세터가 새로운가? 아니면 기존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원하는 걸까. 나이가 들면 창의성은 사라지는가? 나이가 어리면 창의성은 기존 탑재된 옵션인가? 그리고, 대다수 대중이 과연 창의성을 원할까? 그들은 공감과 연대를 더 필요로 하진 않을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것뿐이다. 언제고 내게 실장님과 같은 일이 닥치면 난 어디로 가야 할까. 미리 준비해야 할까. 이직? 창업? 나이가 들수록 이직은 힘들다고 하던데, 게다가 창업은 쉬운 일도 아니잖아. 무턱대고 도전했다가 망하기 쉬운 게 장사인데. 생각이 많아질수록 내 미래는 안갯속에 있는 것만 같다. 그저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실장님의 밝고 건강했던 웃음이다. 그 밝은 건강함이 언제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이가 아닌 지혜와 마인드로 이 세상에 자신의 좌표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길 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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