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 <마스크 걸>을 보는 일요일, 이 글을 쓴다. <마스크 걸>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들이 누구보다 외모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외모지상주의는 쉽게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인이 못생겼다고 느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다른 누군가를 예쁘다고 여긴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서 빨리 그 높은 정상에 닿고 싶어 한다. 그 정상에 닿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의 템포는 남의 발걸음에 맞춰져 있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혹시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그들에게 미움을 사지는 않는지 걱정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고, 걸핏하면 죽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내 말을 듣는 주변 지인도 지쳤겠지만, 나도 나 자신에게 지쳐갔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 수가 줄어들었고, 그만큼 외로움의 강도도 커졌다. ‘이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 죽기라도 해야 할까?’ 이소라는 8집 노래 <track 9>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서 살게 해
노랫말처럼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했고, 나는 그때마다 고독 속에서 살았다. 나는 나를 알지도 못한 채 나를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나를 명명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봤다. ‘내 이름을 다시 지어보면 되지 않을까?’ ‘나를 다시 똑바로 들여다본다면, 여태껏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별거 아니잖아. 남은 인생은 내 이름을 내가 직접 지어 살면 되는 거야.’ 그래서 다시 펜을 들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경계에 골몰하고 있을 즈음 나는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 이름을, 나를 어떻게 찾아야 하지?’ 죽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간절히 살아남기 위해 나는 산책하며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찾아 카페를 다니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쓴다. 그 과정들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근사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
‘난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게 항상 궁금했다. 어른의 국어사전 정의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태껏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발걸음, 내 템포를 믿지 못했다는 뜻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내 템포를 다시 찾으면 되는 것. 내 이름으로, 내 템포로 걷는다면 분명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내 템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커피와 카페, 책, 영화, 자음과 모음의 글자들 곳곳에 ‘그 템포’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불안하게 뛰는 심장 위에 가지런히 손을 얹고 천천히 발을 딛는다. 급할 건 없다. 이건 인생 내내 계속될 모험이니까. 서론이 지나치게 길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이제 모험가로 거듭나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