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어린 시절 즐겨보던 가요톱텐에는 다양한 가수들이 나왔습니다. 댄스, 발라드, 록 밴드, 트로트까지 장르도 다양했죠. 그런데 유독 눈이 가지 않는 음악이 있었어요. 신촌블루스나 김현식 같은 분들의 블루스 음악이었죠. 그들의 연주는 마치 제 살갗에 진하게 눌어붙어 떨어질 것 같지 않았어요. 노래는 어쩌면 그렇게 또 늘어지던지.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 블루스 음악은 너무 멀디멀었던 모양입니다. 화려한 옷과 퍼포먼스, 트렌디한 리듬과 멜로디로 무장한 젊고 어린 가수들이 좋았죠.
블루스 음악을 듣고 ‘내 음악’이라고 느끼기까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삼십 대 무렵부터 세인트 제임스 같은 음악인의 올드 블루스나 국내 블루스 음악을 찾아 들었습니다. 강허달림의 ‘외로운 사람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끈적끈적한 연주 사이로 일상의 고단함이, 보컬이 토하듯 부르는 노랫말 사이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를 들으며 저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 견디게 가슴 저리네/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에는 남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보네/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어린 시절 저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몰랐습니다. 분명 혼자 있었던 시절도 많고 힘든 때도 많았는데 그걸 ‘외롭다’고 표현할 줄 몰랐던 걸까요. 아닙니다. 그때는 제 뒤에 누군가 있었지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절 지켜주었으니까요. 그러니 무서울 게 없었고, 그러니 외롭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겁니다.
지금 저는 제 인생과 밥벌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됐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업무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바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그나마도 왜 이리 빨리 도망가는 걸까요. 퇴근 후의 시간은 업무 때 시간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뛰는 것 같습니다. 2미터 넘는 장신의 농구 선수가 큰 보폭으로 성큼 뛰어가는 것 같아요. 퇴근하고 나면 언제나 혼자입니다. 혼자인 게 싫어서 차라리 야근하고 싶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럴 때 듣는 강허달림의 끈적거리는 이 노래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본래 1988년 이정선이 발표했던 이 노래는 추후 많은 이에게 리메이크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도 앨범에 수록했죠. 전 원곡보다 강허달림의 블루스 버전을 더 좋아합니다. 그건 강허달림이라는 보컬리스트가 어느 순간 자제력을 잃은 듯, 애끓듯 부르는 어떤 순간 때문입니다. 후반부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라고 울부짖는 대목에서 저는 이 노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노래를 싫어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이미 잊어버린 후였죠.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하고 짙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중년, 노년의 고독사 영상을 볼 때마다 전 이 노래를 떠올립니다. 2012년 보일러가 고장 난 반지하 방에서 치매와 대장암 4기에 삶을 내주고 만 제 할머니 같은 노래입니다. 할머니의 삶은 모질었지만, 집안의 장남이었던 저에게만큼은 모든 걸 내주었습니다. 여태껏 겪어본 그 누구보다 제게 깊게 박혀 있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그런 사람은 못 찾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보여줬던 분이니까요.
대장암 4기 진단 이후 치매까지 겹친 할머니는 같이 살자는 가족과 친척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채 신림동 작은 반지하 방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들으며 그때 할머니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을지 가늠해봅니다. 혼자 있기 싫어서, 혼자라는 게 싫어서 할머니는 그렇게 저를 많이 사랑해주었는지 모르죠.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기 전날 밤, 반지하 방을 찾은 전 할머니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불러세워 한참이나 저를 쳐다보던 순간은 기억 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삼십 초가량 저를 물끄러미 바라봤죠.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제가 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음성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듣는 강허달림의 ‘외로운 사람들’에는 깊은 옛 우물이 담겨 있습니다. 그 우물 안에는 퇴근 후 고단한 제 삶이, 막막한 미래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할머니의 눈빛이 잠겨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모든 존재가 제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려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은 “힘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도 외로워”라고 말해줍니다. 그 응답이 너무 좋아서 혼자 있는 밤이면 항상 이 노래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