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에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했습니다. 돈벌이는 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지, 딱히 즐거운 일은 아니었어요. 몇 달 다니다 그만두고, 몇 달 다니다 그만두기를 반복했죠. 하다 안 되면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서 공부나 해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실감각이 없었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관점도 더없이 순진했습니다. 하지만 통장에 돈이 모이지 않고, 돈이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며 삶의 자세가 바뀌었어요. 한 직장에 3년, 4년 이상 머물기 시작했고, 연봉을 조금씩 올려 이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반대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멀리 달아난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제 두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던 글과 행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지박약이죠. 요즘 작가들 대부분은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던데 말이죠. 핑계 대고 싶지는 않아요.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이 주위를 감싸 돌고 아주 오래전에 느꼈던 순간을 생각했지 (중략) 언제나 그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며 허전한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널 이젠 잊고 싶어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는 일이 마냥 좋지는 않겠죠.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이 막막할수록 사람들은 “왕년에 내가 말이야” 하며 라떼 시절을 떠올립니다. 전 그게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실이 시궁창인 걸 알면서도 굳세게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추억은 윤활유 같은 거니까요. 그들은 현실을 바꾸거나 망가뜨리고 싶은 게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저 24시간의 한편, 한 번쯤은 그런 추억들에 잠길 수 있다는 거죠. 그러고 나면 다시 현실을 살아낼 힘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쿨은 1994년 4인조로 데뷔한 댄스 그룹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3인조 체제는 2집 이후의 모습이죠. 음악 스타일도 2집 이후와는 다릅니다. 강력한 비트의 재즈 힙합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에요. 자료를 찾아보니 애당초 그룹 이름 ‘쿨’도 멤버들의 성향이 합치된 장르 ‘쿨 재즈’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퍼포먼스, 어둡지만 강렬한 감각을 안겨주는 이 노래 ‘너이길 원했던 이유’를 사랑했습니다. 2022년 초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커버돼 회자되기도 했죠.
1집 이후 탈퇴한 멤버 최준명이 작사한 노랫말은 특별할 것 없이 흔하디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널 이젠 잊고 싶어”라는 후렴구의 구절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잊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제 경우에도 할머니나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문학하는 후배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몇몇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잊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지난 일인데, 저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과거의 일들이 꼭 현재에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몰라요. 추억이라도 괜찮아요. 현실과의 균형감만 잘 유지한다면, 그 추억이 현실을 지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무엇보다 지친 퇴근길에 제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어주잖아요. 현실의 어느 누구도 제게 달콤한 감각을 전해주진 못하거든요. 오직 그 추억만이 그걸 가능하게 해줍니다. 지금은 글과 멀어져 있지만, 한때 글과 문학 없이는 살 수 없던 그 시절을 되새기고 나면 다시 새로운 의지들이 샘솟습니다. 몇 가지는 금방 사라지지만, 어떤 것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제 마음을 꿈틀거리게 해줍니다. 덕분에 저는 현재를 잘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죠.
어차피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출근해 이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저는 누구에게나 추억을 되새기라 권장하고 싶습니다. 그게 당신을 위로해준다면, 마음을 적셔준다면 얼마든지 꿈꾸고 되새겨도 괜찮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