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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Sep 25. 2023

인생에 마법이 필요하다면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영화는 절 숨 쉬게 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그걸 어떻게 글로 풀어낼지 고민했고, 일상 속 사소한 문제나 여러 사람을 만날 때면 으레 유사한 상황의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이를 이겨내려고 영화를 보고, 기쁜 일이 생기면 해피엔딩 영화를 보며 웃었습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까지는 매년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열 편을 뽑아 기념하기도 했어요. 딱히 가리는 장르나 스타일도 없었습니다. 무성영화는 무성영화의 맛이 있고, 뮤지컬 영화는 흥겨워서 좋고, 액션영화는 스트레스를 풀기에 좋았습니다. 쫄깃한 긴장을 선사하는 스릴리나 공포영화 역시 마찬가지죠. 느린 템포의 아트 무비도 즐겨봤어요. 컷을 좀처럼 나누지 않는 롱테이크 위주의 영화들도 사랑했습니다. 영화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읽고 보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단연코 ‘시네마 키드’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겠죠. 그간 수많은 영화와 만났고, 어떤 영화들은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깊게 박혀 있다가 어떤 계기가 생길 때면 튀어나와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이 영화도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독일 출신의 퍼시 애들론 감독이 연출한 <바그다드 카페>(1993년 개봉)는 엄청난 화제작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 영화의 팬들이 꽤 많을 겁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 커피머신은 고장이 난 지 오래고, 먼지투성이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뿐입니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어느 날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했습니다. 특히 카페 주인 브렌다가 그랬죠. 그러나 곧 야스민의 작은 마법으로 그녀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제베타 스틸이라는 R&B 가수가 부른 노래 ‘Calling You’를 들을 때마다 사막의 모래를 연상시키는 황색 톤의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노랫말 자체가 영화 속 장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거든요.

 

라스베이거스 어디론가 통하는 사막/당신이 있던 곳보다 나은 어딘가/수리가 필요한 커피머신/다 쓰러져가는 한 작은 카페에서/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들리시나요?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내 마음을 관통해요/아기가 울고 있고 난 잠에 들 수 없죠/하지만 우린 알아요 변화가 다가온다는 걸/달콤한 해방이 다가오네요

 

우선 이 작품의 배경은 노랫말에서 짐작할 수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카페입니다. 주유소를 겸한 이곳의 이름이 ‘바그다드 카페’이지요. 잔잔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노래, ‘너를 부르고 있다’는 제베타 스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도 이곳을 찾아 함께하고픈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황폐한 사막에서 황폐한 그림으로 남아 있던 바그다드 카페는 야스민의 마법이 촉매가 돼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으로 변합니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 ‘내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선뜻 함께 걷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화 속 브렌다와 야스민처럼 말이죠.

 

세상은 자본과 힘의 논리로만 돌아갑니다.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말을 잃습니다. 말을 잃은 사람들은 도심 곳곳에서 잔뜩 웅크린 채 살아갑니다. 누군가 탈락하고 밀려나면 그저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뿐입니다. 승자는 영원한 승자의 위치를 유지하기 마련이고, 패자는 다시 반등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 같은 후자 쪽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마법이 아닐지요? 야스민이 그랬던 것처럼, 황폐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마법 말입니다. ‘Calling You’를 듣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따뜻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야스민의 마법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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