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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Sep 24. 2023

오늘 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마포구 서교동에서 직장을 두 군데 다녔습니다. 퇴근하는 길이면 홍대 거리를 거쳐 홍대입구역으로 걸어갔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풍경은 항상 제 가슴을 뛰게 했어요. 천차만별 헤어 스타일과 복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선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느껴졌거든요. 항상 남을 의식하며 발맞춰야 한다고 배워온 제게 그건 놀라운 혁신 같았습니다. 이건 다른 동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서교동과 연남동, 망원동 등 일명 홍대 부근 거리 사람들의 특징이었어요.      


가끔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클럽 빵 같은 라이브 클럽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오소영과 이장혁, 송용창, 게이트 플라워즈 같은 음악인들의 공연을 보는 게 낙이었죠. 메인 스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악들을 라이브로 접할 수 있는 데다, 음악인과의 거리가 가까워 쉽게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새로운 음악에 갈증을 느꼈던 제게는 안성맞춤 공간이었죠.      


밤이 깊었네/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이 밤에 취해(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항상 당신 곁에 머물고 싶지만/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떠나고만 싶네요/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겄어요/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 마오/하나둘 피워오는 어린 시절 동화 같은 별을 보면서/오늘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지/밤이 깊었네/방황하며 노래하는 그 불빛들/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가지 마라 가지 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오늘 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크라잉넛은 아마 홍대 인디 씬에서는 선배급이 아닐까 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하며 사실상 이 씬을 만든 사람들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한 ‘조선 펑크’ 밴드입니다. ‘말 달리자’, ‘룩셈부르크’, ‘명동 콜링’ 등 명곡이 워낙 많지만 특히 전 ‘밤이 깊었네’를 좋아했어요. 2001년 발매된 앨범 <하수연가>의 수록곡인데요. 노래 부르기 어렵지 않은 데다 고음이 없고 지르는 맛이 있어서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곡입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출판사를 다닐 때에는 홍대 부근에서 회식을 참 자주 했고, 그럴 때면 2~3차로 노래방이 필수였습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는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죠. 1차로 고기에 소주, 2차에 맥주와 마른 안주를 먹고 나면 대부분의 인원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몇몇은 비틀거리고, 몇몇은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챙기며 향하는 곳은 대부분 노래방이었던 거죠. 대부분 당대 유행하는 댄스나 발라드를 불렀지만 저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김광석, 유재하의 노래를 부르거나 크라잉넛, 노브레인의 노래를 선곡했어요. 특히 ‘밤이 깊었네’는 부를 때마다 반응이 좋았던 곡입니다. 후렴구의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대목에서는 취해 있던 인원들 모두 따라 부르고는 했죠. 서비스 시간까지 끝날 무렵이면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가 대미를 장식했고요.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를 외치고 나면 오랫동안 쌓아둔 업무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는 듯했습니다. 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땐 참 좋았다는 ‘꼰대스러운’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유대감 쌓을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사라진 건 사실입니다. 이제는 함께 술 마실 일도,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회사는 그저 돈 버는 곳, 일 이야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전 이게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날 밤 “술에 취한 마차 타고 지친 달을 따러” 가야겠다고 외치던 “방황하던 불빛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밤이 깊어질 때면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라고 외치고 싶습니다만, 이제는 거기에 응답할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전우들도 이제는 이러한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뀐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는 있겠지요. 그게 또 인간이니까요.      


가끔 친구와 홍대에서 만나면 그때 즐겨 걷던 거리를 걷습니다. 그리고 술을 한잔 걸치고 나면 나지막이 크라잉넛의 노래를 부릅니다. “밤이 깊었네!” 홍대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그 시절이 선명하게 되살아납니다. 제가 지금 돈벌이를 하기 위해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이런 추억들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추억들마저 없다면 제 마음은 진즉에 황폐해졌을 거예요. 나지막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옛날의 그 전우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오늘 밤 새빨간 꽃잎처럼 그대 발에 머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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