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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의 경지

소설가 김성종

by Jacquesenid


국내에 ‘추리문학’이라는 단어가 낯설던 1970년대부터 한길을 걸은 사내가 있다.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프레데릭 포사이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등 외국문학으로만 접할 수 있던 추리문학을 우리의 역사와 일상 속으로 녹여낸 그는 ‘큰 산’으로 불린다. 국내 추리문학의 영토를 워낙 넓고 깊게 지은 덕분이다. 부산 김성종 추리문학관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온 소설가 김성종을 만났다.


추리문학의 큰 산이 되기까지

부산 달맞이고개에 자리 잡은 김성종 추리문학관은 그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구멍이 숭숭 뚫린 비석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보고 있노라면 이 공간은 마치 어떤 사연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1992년 3월 18일 개관한 이 공간에서 김성종은 줄곧 글을 읽고 고민하고 관찰하며 작품을 발표해왔다. 추리소설의 대가로 불리지만 1969년 등단작(「경찰관」)은 추리 장르 작품이 아니었다.


“추리문학을 좋아했지만 등단 당시 국내에는 추리문학 작가가 없었어요. 문단에서는 추리문학을 문학 범주에서 벗어난 장르라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고상한 문학에 감히 추리 따위가?’ 같은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밖을 벗어나면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일본은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작가가 진즉에 활동하고 미국 및 유럽에서도 에드가 앨런 포나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그 가치를 인정받던 때거든요. 우리나라는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생각되더군요. 그렇다면 내가 길을 파보겠다는 심정으로 추리문학에 뛰어들었어요. 『최후의 증인』은 그 시작이었죠.”


『최후의 증인』은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소설가 김동리와 유주현,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심사를 진행한 장편소설 공모에서 추리문학이 당선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심사위원들이 편견을 가질까 봐 비록 ‘추리문학’이라고 써 넣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한국형 추리문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추리적 기법으로 묘파한 작품이라며 그에게 상을 안겨주었다. 이 수상은 여러모로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당시 상금 200만 원(지금 가치로 2억 원가량)을 받아 서울 화곡동에 집을 샀고 남은 돈은 결혼 자금에 보탰다. 작가의 인생 역시 바뀌었다. 그의 능력을 확인한 여러 언론사에서 연재 청탁이 쏟아졌다. 한때는 여덟 개 작품을 동시 연재할 때도 있었다고.


“당시 추리만 쓴 건 아니고 『일간스포츠』에서 『여명의 눈동자』를 6년 동안 연재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당시 장기영 『일간스포츠』 사장이 날 불러 한 작품 더 연재해달라고 하더군요. 한 작가가 한 언론사에 두 작품을 연재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기에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추정’이라는 가명을 지어주며 그 이름으로 연재해달라고 했죠. 결국 그래서 추가로 연재한 작품이 『제5열』입니다.”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 등 대하소설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특히 추리문학 분야에서 그의 자장은 넓고도 깊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을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아파트와 열차 등 우리 일상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써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프랑스, 스위스 등 그 배경에는 국경이 없었다. 그렇게 쓰인 작품만 수십 편, 권수로는 100권에 달한다. 척박한 토양을 직접 가꾸며 대한민국에 ‘추리문학’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수풀이 워낙 울창하게 우거진 탓에 다른 추리작가들이 들어올 틈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스스로도 “내가 워낙 많이 써서 그런지 다른 추리작가들이 쉽게 날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는 그의 모습에는 대가로서의 여유와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에게 느낄 수 있는 강직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고단했던 삶과 자양분이 된 근대문학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최후의 증인』에서 지혜와 바우의 비극,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옥과 하림, 대치의 죽음을 넘나드는 삶 뒤에는 모두 6‧25 전쟁이 있다. 그에게도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비롯된 깊은 상처가 있다. 1941년생으로 당시 열 살 무렵이던 그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서울에 거주할 때 중공군이 내려오는 바람에 1‧4후퇴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징용을 간 상황이어서,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자식들과 어머니가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부산까지 내려가 부두에서 잠깐 잠을 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수를 거쳐 아버지 고향인 구례로 건너갔다. 그 사이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떴다. 가마니에 둘둘 말린 어머니 시신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형제들만 남아 구례에서 ‘올망졸망’ 버티며 살아갔다. 그런 그에게 죽음은 항상 곁에 머문 존재였다.


“지리산에 공비가 숨어 살던 시절인데 하루는 소년병들이 노래를 부르며 산에서 내려오는 걸 봤어요. 공비를 토벌하러 갔던 소년병들이었는데, 웬 사람 머리 하나를 들고 오더라고요. 한 소녀의 머리였어요. 여수‧순천 사건 이후 반란군 일부가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는데, 그때 그들에게 잡혀 끌려간 소녀 중 한 명 같았어요.”


1‧4후퇴 전 서울 시절에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기억이 있다. 당시 그는 집 인근에서 말을 끌고 걸어가는 북한 인민군 소년병을 목격했다. 무거운 포를 지고 있던 말의 등판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채찍 자국이 하도 많아 건드리기만 해도 아플 것 같았다. 상처로 가득했던 말의 고단한 등판, 이유도 모르고 반란군에 끌려갔다가 빨치산으로 오인 받아 목숨을 잃은 소녀의 머리는 이후 김성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어느 창녀의 죽음』과 『최후의 증인』 등 그의 초기 작품이 비극적이고 어두운 색채를 띤 건 스스로도 인정하듯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한국 근대문학도 그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김내성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운 것은 물론 소설 읽는 재미를 깨달았다. 특히 일본 탐정소설 전문지인 『프로필』과 『모던 일본』 등에 작품이 당선되며 이름을 떨친 김내성의 존재는 그의 꿈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됐다.


“김내성 작가는 너무 일찍(49세 작고) 돌아가셨어요. 좀 더 사셨다면 국내 추리문학에 더 큰 존재가 되셨을 거예요. 그 밖에 「광염소나타」에서 극단적인 미의식과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김동인 작가 역시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분입니다. 잡지나 신문을 통해 접했던 한국 근대문학이 제게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어요.”


아직 소년

인터뷰하기 전 추리문학관 내부를 살펴봤다. 작가의 육필 원고 및 국내외 출판 도서, 문학 관련 국내외 잡지들은 물론 그가 평소 좋아하고 즐겨 읽던 작가들의 사진과 관련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헤밍웨이, 도스토옙스키, 마쓰모토 세이초 등 장르 불문 다양한 분야의 지성이 한곳에 모여 있다. 1층 서재 공간에는 주로 최근 출판된 책들이 꽂혀 있는데 권수는 물론 그 종류가 대단히 광범위하다. 민음사와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선, 다양한 국내외 고전, 철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책들을 보고 있으면 그의 원천이 결국 다양한 독서에 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책들만큼이나 창작을 향한 그의 열망 역시 끝이 없다.


“고전 추리문학은 반전이나 트릭이 중심이었지만 요즘에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무척 다양해졌어요. 최근에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1955)처럼 완전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범죄 과정 묘사 자체에서 쾌감을 주는 작품 말이죠.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도 한 편 더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후쿠오카 살인』(2011)이란 제 작품이 있는데, 이를 잇는 연작으로 ‘오사카 살인사건’ ‘삿포로 살인사건’ 같은 작품을 구상 중이에요.”


『피아노 살인』(1985)을 읽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과 인간의 욕망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중반부까지 평이하게 진행되다 종반부 들어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며 소설의 방향을 뒤흔드는 놀라운 전개를 보여준다. 다소 느릿하고 산만하게 글자를 따라가던 두 눈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느낌이랄까. 『김성종 읽기』(1999)를 쓴 백휴 작가는 『피아노 살인』이 그의 대표작이라며 한국 최초의 포스트모던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이렇듯 좋은 작품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책이나 신문 같은 매체를 읽으며 좋은 소재를 얻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남들과 똑같은 장면, 동일한 기사를 봐도 거기서 남다른 스토리텔링을 떠올리고 작품으로 표현해낼 줄 알아야 해요. 그게 바로 작가로서의 능력입니다.”


인터뷰 중 그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추리문학을 괄시하는 우리나라 문단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고, 1970년대 자비를 들여 포르투갈까지 건너가 참여했던 세계 추리작가 회의에서도 그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상황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두 발과 두 손으로 직접 헤쳐 나가는 길을 택했다. 혈기왕성한 소년은 쉬지 않고 길을 걸었다. 그가 걷는 길은 곧 역사가 됐다. 『후쿠오카 살인』(2011)의 작가 후기에서 그는 “다음 작품인 ‘오사카 살인’에서 오사카의 뒷골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검은 세계를 보여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썼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누군가 말할 즈음, 그는 아직 아니라고 말하며 계속 걷는다. 걸어온 길뿐 아니라 그가 앞으로 내딛을 길도 전인미답임을 믿는다.



[작가 소개]

김성종(金聖鍾)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경찰관」이 당선돼 등단했다.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추리문학의 길을 걸었다. 주요 작품으로 『최후의 증인』과 『여명의 눈동자』, 『제5열』, 『미로의 저쪽』, 『제5의 사나이』, 『아름다운 밀회』, 『국제열차 살인사건』, 『백색인간』, 『비밀의 연인』, 『세 얼굴을 가진 사나이』,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안개의 사나이』, 『후쿠오카 살인』, 『늑대소년 다루』, 『달맞이언덕의 안개』,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등 50여 편이 있으며, 소설집으로는 『회색의 벼랑』 『어느 창녀의 죽음』, 『고독과 굴욕』 등이 있다. 후학 양성과 추리문학 발전을 위해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세계 최초의 ‘추리문학관’을 세웠으며, 현재는 해운대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국추리문학대상, 봉생문화상, 부산시문화상, 부산MBC문화대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행했던(지금은 폐간) 『근대문학』 10호에 실린 제 원고를 이곳에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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