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더라고. 안 될 걸 알면서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죽는 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들 두려워하잖아. 나도 그래.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 희한한 아이였지.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슬프고 두려워서 어떨 때는 울고, 어떨 때는 잠을 설쳤으니까.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 마음은 불확실했어. 아직 너무 멀게 느껴졌거든. 나이를 먹을수록 불확실했던 마음은 점차 명료해지고 있어. 이제 점차 실체가 보여. 할매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견뎌야 하는 일상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싶지만 딱히 다른 답을 가진 건 아냐. 여전히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쉬겠지. 혼자니까 여전히 쓸쓸할 테고. 이렇게 스멀스멀 하루 또 하루 살다 보면 내 흔적은 이 세계에서 사라지겠지. 억울할 법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냐. 이 땅에서는 그렇게 한 생을 살다가 저물어간 수많은 삶들이 있었잖아. 그들의 기억, 기록, 꿈, 말들이 분명 이 세계 어디선가 잠들어 있을 거야. 남은 생 동안 내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거기에 있어. 잠들어 있는 그 목소리들을 끄집어낼 거야. 그리고 되살려줄 거야. 당신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때때로 이런 삶과 꿈, 시간들이 있었노라, 그러니까 당신들도 찬란하게 한 생을 살고 저물게 되면 , 그다음 누군가가 당신들의 삶을 끄집어낼 거라고. 그러니 당신들이 죽고 난 다음에도 당신들은 역시 이 세계에 찬란히 존재할 거라고. 당신이 소중하게 느꼈던 한 모금의 물, 한 마디의 말, 한 걸음, 그리고 머릿속 수만 가지 생각들. 그 모든 게 이 땅 아래에 아직 존재한다고. 잠들어 있을 뿐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고 말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