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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

by Jacquesenid

오늘은 현충일이지만 절기상으로는 망종(芒種)이다. ‘벼처럼 수염이 있는 곡식 종자를 뿌릴 시기’라는 뜻. 한 해 농사를 결정 짓는 중요한 날인 셈인데 사실 농업과는 관련이 없는 내게 이날은 연휴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연휴면 매번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밥 먹고 운동하고 씻고 소파에 누워 가만히 ‘멍’ 때리는 게 좋다.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지겹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내겐 그런 반복 패턴이 안정감을 준다.


어릴 때는 똑같은 노래만 듣고 옛날이야기에 취한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허구한 날 이장희 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버지, 마치 교회 성가대에서 부르듯 가성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며 까치 노래(노래 제목이나 가수는 기억나지 않는)를 부르시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나와 여동생이 초등학생, 중학생일 때 가족 단위로 노래방에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부모님의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들어야 했다. 노래방 책자 뒤에서 최신곡을 찾았던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장희 씨는 신곡을 내지 않는 걸까. 왜 만날 <그건 너>일까. 부모님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번 같은 반찬과 찌개가 일주일이나 이주일 단위로 밥상에 올라왔다. 청소 주기나 잔소리를 하는 시기도 비슷하게 반복해 찾아왔다. 어른들은 비슷한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부모님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만의 원을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던 내가 이제는 내 주변에 원을 그리고 있다. 다른 감각은 들어올 틈도 없이 튼실한 성벽을 축조했다. 같은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이나 사진, 회화 등을 반복해서 듣고 보고 느낀다. 새로운 게 들어올 때면 우선 경계심부터 느낀다. 혹시 내 일상을 헤집어놓지는 않을까, 나를 바꾸진 않을까. 난 내 일상이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바뀌는 걸 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것은 신선함이나 낯섦이 아닌 안정감이니까. 똑같은 얼굴을 만날 봐서 지겨운 게 아니다. 똑같은 얼굴을 만날 보면 안심이 된다. 내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내가 아직 악몽의 한가운데에 서 있지는 않다는 데 안심한다.


새로운 충격과 전환은 우연히 찾아온다. 붐비는 출퇴근 지하철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던 매력적인 멜로디, 거리를 걷다가 듣게 된 리듬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요즘에는 유튜브의 알고리즘도 한몫한다. 가끔 생소한 음악이나 콘텐츠를 추천해주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잠자기 전까지 종일 보고 듣는다. 최근에는 맷 쿠엔틴의 음악이 그랬다. <Wandering ways>와 <Morning Dew>를 듣고 난 그 음악들에 종속되기를 자처했다.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도, 목욕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집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언제나 그의 음악을 듣는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분명 새로운 게 싫은데, 익숙하고 안정된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같은 길만 걷고 같은 풍경만 보는 게 익숙하고 좋았는데, 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이 돼갔다. 재즈 힙합이나 클래식, 국악, 오컬트, 추리, 뱀파이어 장르를 원래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모두 그런 식으로 내 원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쌓여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다.


생각해보면 부모님도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뉴스나 대하드라마만 보던 아버지는 어느새 어머니와 함께 일일연속극을 보며 악역을 욕하는 분이 됐고, 아버지와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던 어머니는 이제 드라마도 같이 보고 운동도 함께한다. 몰랐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원이 있지만, 그 원의 크기나 모양이 매번 같지는 않다는 걸. 어쩌면 나는 부모님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무관심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다. 나는 나를 지나치게 편협하게 바라봤고, 때로는 너무 쉽게 판단했다. 어느 순간 내가 변하고 어떤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나의 가치를 몰랐으니 남도 나의 가치를 알 리 없지.


망종은 씨를 뿌리는 절기. 내 마음에 씨를 뿌려야 할 때는 아닐까. 또 모르지. 별 의미 없이 흙 속에 넣어둔 씨가 어떻게 자라 무엇이 될지. 내 원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풀, 동물, 벌레 등등 그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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