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다음 날 오전에는 광화문 취재가 있었다. 으레 그렇듯 인터뷰를 마친 다음 사진작가와 함께 인근 커피숍에 들렀다. 나이는 고작 한두 살 많은데 표정은 마치 부처 같은 사람이다. 말투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를 만나고 나서야 나는 내게도 예술적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됐다. 먹고살려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를 자르고 조이고 깎아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글을 쓸 때 ‘내 글’ 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클라이언트와 취재 대상의 영광과 행복에 복종하는 글을 반복해서 써댔다. 그렇다고 그 작가가 마음대로 자신을 내세우며 일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일할 때는 일의 눈으로, 자신의 개인 작품을 찍을 때는 자신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고 잊었던 그 ‘눈’을 그는 갖고 있었다.
조금씩 빗장이 열릴 즈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머릿속에서 불안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 몇 가지 사례를 들며 내 고민과 불안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대뜸 메모지를 꺼내 한자를 적었다. ‘放下着(방하착)’이라 쓰여 있었다. 불교에서 화두로 쓰이는 말인데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는 뜻. 특별한 말 같지는 않은데 ‘부처’ 같은 그의 표정 때문인지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리고 무심코 내게 말을 건넸다. 불안이 사라지길,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길 제가 응원할게요.
사실 난 그 마지막 말에 무너졌다. 내 마음, 내 상태를 응원해준다는 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장 선후배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없다. 가까운 친구에게도 못 들어봤다. 마음으로는 생각하니 어쩌니 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말’이다. 내 귓가에 들려오는 그 달콤한 말이 때로는 전부다. 으레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한 당사자도 정작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도 내게는 그 말, 그 위로가 필요했다.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린 채 “세상은 어차피 각자 살아가는 것이며, 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해선 안 되며, 사탕발림은 널 구원하지 않는다, 널 구원할 사람은 너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게는 그 말이 필요했다. 모순 같지만.
내가 과연 마음속 집착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던데. 이렇게 말하자 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이겨내고 변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행복을 찾더라고요. 맞다.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해버리는 대신,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친다면 최소한 내 두 눈에는 더 많은 세상이 보일 수도 있잖아. 안 하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낫지.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기대하지 않았던 곳, 실은 카페보다 빨리 사무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커피 한잔하자는 작가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워 들른 카페에서 그때, 나는 내가 지난 시간 동안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하늘이 물감보다 더 진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주던 어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