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 주변의 풍경이나 동물,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일곱살 때 내가 살았던 서울 종암동에는 더 이상 그때의 풍경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 날 사랑해주던 조부모도. 학창 시절 만난 친구 몇 명도 세상을 떴다.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갔던 노래방, 당구장, 카페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나이를 먹는 일은 결국 매번 이별을 반복하고, 그 이별에 익숙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아끼던 반려동물이 사라져도 서럽게 슬퍼하고 때로는 울었다. 생각해보면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죽음에는 계급이 없다. 내게는 그랬다. 하찮은 죽음이란 없었다. 대학 때 친해지지 못해 아쉬웠던 동기 정혜주의 죽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지망생 동생의 죽음 모두 내 가슴을 무너뜨렸다.
오늘 95세로 생을 마감한 진행자 송해 선생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선생은 텔레비전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 무렵부터는 언제나 '일요일의 남자'로 불렸다. 어린 시절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보지 않던 방송이다. 서른이 넘은 즈음부터 달리 보였다. 각자의 사연들이 어떤 보석보다 밝게 빛났고, 송해 선생과 악단 멤버들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한동안 매주 만나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송해 선생은 코로나19 이후로 쉽게 볼 수 없었고 결국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눈이 접힐 정도로 활짝 핀 웃음이 기억난다. 브라운관이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벅차올랐다. 꼭 나를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주는 웃음 같았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그 웃음을 오랫동안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