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말에는 친척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주례 없이 진행된 결혼식은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마치 한 편의 사랑 영화 같았다. 좋은 영화는 아니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유치한 영화. 뭐 어떻게 만나서 반했고 결국은 사랑했네, 우리는 행복할 거라는 식의 이야기. 유치해도 결혼식에는 이런 이야기가 어울린다. 괜히 인상 쓰면서 열창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은 어차피 한 가족이 된 젊은 부부인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한 장남은 부모님에게 그저 처치 곤란한 짐인가 보다. 결혼식을 다녀온 뒤 쏟아진 부모님의 따가운 시선과 한숨, 날카로운 말들이 내 몸과 마음 곳곳에 꽂혔다. 부모 세대의 영광은 아직도 자식들의 출세와 성공적인 결혼으로 결정된다. 그러니까 내가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아닌 것도, 결혼을 안 하고 사는 것도 일종의 불효로 여겨진다. 요즘 세상은 달라졌다고 하던데. 중년이 돼서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고, 인식도 달라졌다고 하던데. 인터넷 뉴스나 커뮤니티에서는 그렇다는데 내 주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지난 주말 나는 불효자 신세로 결혼식을 지켜봐야 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나이 먹어서 신세 비관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꼴불견인지 아느냐고. 그러니까 그들의 논리대로면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과 편견 때문에 휩싸여 있어도 나는 당당해야 한다. 긍정적이거나 웃겨야 한다. 내 현실은 지옥 같은데, 이 지옥도를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골몰하는 내게 핀잔을 준다. 네 글은 긍정적이어야 하고, 웃겨야 한다. 절대 현실을 비관해서는 안 된다. 나이 먹는다고 사람이 딱히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난 원래 염세적인 사람이고 신세 비관을 습관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데, 누군가는 넌 그런 사람이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 좋은 글의 조건은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법칙 같은 게 있나? 도입부에서는 내 상황을 웃기게 그려야 하고, 중간에는 풍자를 곁들이면 좋고, 그렇지만 결국 스스로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나? 그게 좋은 글일까?
내가 ‘나’로 살기 힘든 시대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그렇다. 사람들은 때마다 내게 강요했다. 넌 그래야 하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10~20대 때는 여행은 물론 방황도 해봐야 하고, 30대 때는 결혼해서 정신을 차려야 하고, 40대 때는 가족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하고.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옳다고 일컬어지는 삶의 방식대로 걸어가야 좋은 사람, 선량한 사람 취급이다.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딴죽을 걸면 중학생 사춘기 소년 취급이다. 그래서 입을 닫는다. 마음껏 떠드세요. 조용히 입 닫고 살게요.
사실 내가 누군지 잊고 살았다. 한때는 기억했던 것 같기도.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상황은 싸늘해진다. 40대 노총각을 ‘인생의 실패자’나 ‘패배자’, ‘성격 장애자’, ‘한심한 인간’으로 보는 시선은 아직도 흔하다. 진보, 보수,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대통합해서 불쌍히 여기거나 훈계질이다. 그러니 이럴수록 밖에 나가기 싫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진 이유다.
글을 밝게 써야 하나. 가끔 흔들린다. 난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야 ‘팔리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어디에든 ‘성공 공식’을 들먹이는 작자들이 있다. 이렇게 써야 등단을 할 수 있고, 이런 주제를 건드려야 하고, 이런 내용이나 묘사는 안 하는 게 좋고. 공식대로 흘러가고, 공식대로 등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세상, 그런 세상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이 태양은 저물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대로라면 난 틀린 게 맞다. 실패 열쇠를 갖고 있는 걸 알면서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니까. 가끔은 내가 잃어버린 내가 추운 곳에서 떨거나 얼어 죽은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한답시고 너무 방치하고 살았나 보다. 넌 어디에 있니. 내가 잃어버린 내가, 어딘가에서 잘 버텼으면 한다. 지금은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조만간 널 다시 찾아낼 거라고, 그러고는 더 이상 널 부인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웃어줄 거라고, 괜찮다고, 네가 살아온 삶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다고 말해줄 작정이다. 설령 엉망으로 살았다 하더라도 나는 널 속일 작정이다. 지금 너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가벼운 위로인지도 모르니까. 해 질 녘까지 수고했다고,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말해줄 작정이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송장이 되기 전까지 생각하고 쓰고 읽고 느끼는 것뿐이라고,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김종삼, <묵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