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일기 :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본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해드리게 될 것 같아 미리 안내드립니다.>
(더불어 극히 주관적인 글임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D)
3일 전,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봤습니다. 잠들기 전 켜본 '왓챠'앱에 보고 싶다고 표시를 해둔 영화여서 피곤함을 무릅쓰고 영화를 틀었습니다.
죽은 이들이 저세상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역 림보, 그 역에서 죽은 자들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 순간을 고릅니다. 림보의 직원들은 그런 죽은 자들의 행복한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이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 죽은 자 들은 저세상으로 떠나게 됩니다.
누군가는 90년, 누군가는 75년, 누군가는 23년, 누군가는 17년.. 누군가는 5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서 기억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기억만을 골라야 하는 순간에 긴 고민에 빠지기도, 선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죽은 이들이 머무는 7일 중, 4일째가 되는 목요일 해가 지기 전. 그들은 행복한 순간을 선택해야 합니다. 림보 역의 직원들과 함께 수많은 얘기를 나누고 회상하며 추억을 되새깁니다.
디즈니 랜드에서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밥을 먹고 놀이기구를 탄 기억. 어린 시절 경전철 맨 앞자리에 서 열린 창문 틈새로 바람을 맞으며 학교를 가던 기억. 어린 시절 오빠가 사준 옷을 입고 춤추며 놀던 기억. 사랑하는 배우자와 공원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때. 파일럿을 꿈꾸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가르던 때. 어린 시절 모은 잡동사니를 들고 장롱 안에 들어가 숨었던 기억.
당시 입었던 옷, 탔던 비행기의 종류, 전철의 종류, 심지어는 당시의 계절까지 림보의 직원들은 영상에서 그 기억을 잘 재현하기 위해 죽은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재현된 장면을 다 같이 모여 보다 보면, 그 순간을 떠올린 이들은 어느덧 자리에 없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말하는 기억들을 들으며,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까? 하고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선택한 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누군가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순간,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을 선택했습니다.
70대의 한 노인은 자신의 삶이 "고만고만한 학교, 고만고만한 회사, 고만고만한 결혼"이라며 선택을 거부했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직원은 71년의 인생을 비디오테이프로 구해 그에게 전해줍니다. 영상을 보며 '바보 녀석' 이라며 자신을 탓하다가도 결국 그는 가져갈 기억을 선택합니다.
정년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공원에 나와 자신들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영화관을 함께 가기로 약속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들은 영화관에 함께 가지 못했고,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영화는 연애시절 함께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결국 그들이 선택했던 것은 무언가에 목메고 쫓던 목표가 아니라, 일상 속의 행복했던 순간, 혹은 행복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출근길에 승진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며 바라보지 못했던 창밖의 풍경이 유난히 멋있는 날이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별 것 아닌 순간이 우리에겐 행복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행복에 관한 명언을 찾던 중,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명언이 있어 함께 적어봅니다.
"Happiness often sneaks in a door you did not think was open"
(가끔 행복은 당신이 열어놓았는지 깨닫지도 못한 문을 통해 슬그머니 들어온다)
미국의 영화배우 존 베리모어가 남긴 명언이라고 합니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속에도 우리가 열어놓았는지 깨닫지도 못했던 순간들이 어느덧 우리에게 행복으로 다가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그러한 행복을 잠시나마 찾아보는 순간이 인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 년의 반이 넘게 지난 이 시점에서 올 한 해 여러분에게 슬-그 머니 찾아왔던 행복을 되돌아보실 수 있는 순간이 있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하노마의 영화의 시선, 혹은 영화 속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