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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Jan 23. 2020

28살에 쓴 나의 유언장

죽음을 미리 겪는다면...

1993년, 어머니의 몸을 벗어나 세상의 숨을 처음 마셨고 2020년이 된 지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의 마지막 편지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이 편지를 들으시는 분들이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읽는 이는 정해두고 싶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을 알기에,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눠준 이선생에게 이 글을 읽어주기를 부탁합니다(친구들아, 서운해하지 말거라. 떠나가는 이에게 서운함을 남기지 말아다오).


나는 부디 화장해서 가족들이 그리울 때 찾아오기 쉬운 곳에 산골해주시고, 이 글은 발인제를 지내기 전, 그 때 읽어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어린 시절 자식을 위해 무거운 어깨를 털고 일어나 묵묵히 직장으로 향하던 당신의 뒷모습을 알지 못해 미안합니다. 직장에 다니고서야 당신이 챙겨온 군것질거리가 당신의 고된 하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과묵하지만 넌지시 표현하는 사랑을 뒤늦게나마 깨달아 그것을 되새김질하고, 또 느낄 수 있어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아버지였고, 최고의 남자 그리고 버팀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 내 맘속에는 당신에게 남긴 모진 말들이 평생의 짐이었습니다. 이 짐을 이렇게 덜어내는 동생을 용서하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언젠가 말했겠지요, 마르셀 뒤샹의 샘은 미술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 구설수에 수도 없이 많이 올랐지만, 그는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그또한 87년 7월 28일 생입니다. 당신이 내게 해준 그 말, 누구도 급하게 뛰어가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 천천히 풍경을 보고 나아가라는 말. 그 대답을 이제서야 합니다. 당신도 부디 천천히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풍경을 볼 수 있기를, 당신은 내게 최고의 친구이자, 닮고 싶은 남자였습니다.


백번을 더 사랑한다 말해도 아쉬운 나의 어머니, 당신께 살아생전 수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했지만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신의 웃음과 응원, 그리고 말은 지금의 나를 키워냈고, 그런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멋잇는 사람, 그리고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멋잇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고픈 것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줄 아는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고, 조금이나마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후회를 하나 말하라면, 당신께 한번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아쉬움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나를 낳아주었고, 나를 키워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떠난다 했습니다. 당신에게 나를 떠나보내는 순간을 안기게 되어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울지 말아주세요. 당신, 아버지, 그리고 형, 우리 가족 덕분에 내 인생은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아, 몇 없는 나의 오랜 친구들아. 까칠함으로 무장한 나를 무장해제 시키고 십년이 넘도록 내 곁을 지켜주어 고맙다. 너희가 있었기에 내 유년기가, 그리고 청년으로써 보낸 시간들이 무척이나 행복했고. 즐거웠다. 사랑한다 자주 말하지 못했지만, 사랑한다.


사랑하는 내가 따른 지인들, 그리고 형, 누나 같은 선배들. 그대들의 모습은 내게 때로는 선구자 같았고, 그대들과 나누며 풀어간 고민들 덕분에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과 함께한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음을 꼭 알아주길 빕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당신. 당신이 있었기에 내 젊음이 빛났고, 또 소중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분들이 많기에. 저 녀석 나에게 남긴 말이 하나도 없어? 싶은 당신이 바로 내가 고마워 할 사람이라고. 그런 생각을 해주시는 여러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분들입니다.


짐캐리는 말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라.”


반 고흐는 말했습니다.

“위대한 성과는 소소한 일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도, 소소한 일들을 성공하지도 못했습니다. 작은 새장속을 발버둥 치다 이렇게나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릴 지켜준 여러분들 모두, 부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그 작은 도전들이 성공으로 이어지실 수 있기를, 저보다 더 많은 생을 살아갈 여러분들이 한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실수 있기를..


그리고 사랑한다고, 꼭 말하세요. 오늘은 망설이지 말고 집에 돌아가서, 지금 당장 핸드폰을 꺼내서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여러분의 인생은 결국 사랑받았던, 그리고 사랑했던 순간들로 가득 찰 것 입니다.


제 마지막 유언은 이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어 감사했고, 나를 사랑해주어 감사했습니다. 저 또한 사랑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가시는 길 또한 사랑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P.s 오랜시간 나를 기다려온 용용이와 함께 가겠습니다. 가는길 행여나 걱정마세요.


감사합니다.

하노마 올림.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늘 죽음을 생각해봅니다. 문득 몇번의 죽음을 생각한 뒤에. 나의 유언장을 적어봅니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무슨 말들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적어본 글입니다.


진짜 유언장이라면 재산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상세히 적어야겠지만, 그런 진짜 유언장이 아니기에. 내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인 마음을 가득 담아 적어본 글입니다.


쓰면서, 그리고 쓰고나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분들도 한번쯤 써보시길..


아, 그리고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립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하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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