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커플이었던 우리는 보이스톡으로 헤어졌다. 마지막 통화를 하면서 나는 끝내 질척거렸다.
도련(F) 한국에 돌아오면, 우리 밥 한 번 먹자.
그때까지 난 달라져있을 거고, 넌 나한테 다시 반할 거니까.
그 통화를 끝으로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난운동도새로 시작하고, 드라마 극본 공모전을 준비하고, 심리 상담도 병행하면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가끔 업데이트되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밤잠을 설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 시작할 우리 연애를 상상하며 버텼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됐다. 하지만 전남자친구가 한국에 돌아오는날짜가한참이 지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껏 나는 진짜 나를 마주하기보다, 재회에 대한 헛된 희망을 품으며 버티고 있던 거구나. 그저 전 남자친구에게 보여줄 나를 꾸며내고 있었구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그날, 나는 심리 상담가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이별을 인정했다.
원래 타이밍이란 이렇게 얄궂다. 내가 재회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 거짓말처럼 전 남자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압구정의 한 레스토랑에서 마주한 전 남자친구는 머리가 한참 길어있었고, 더 이상 대학생 신분이 아니었으며, 많은 업무량으로 야위어있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겉모습뿐이 아니었다. 전 남자친구의 마음의 크기는 더 이상 예전만 하지 않았고, 나는 우리 사이의 온도차에 침착함을 잃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던 내 마음은 데쳐진 깻잎처럼 숨이 죽었고, 너덜너덜해졌고, 보기 좋게 다시 차였다. 그는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하며,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게 변명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을 때 거절당하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는 사람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감정의 그래프가 있다면, 최저점이며 이보다 내려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비웃듯, 정확히 1주일 뒤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
팀장너도 알잖아, 지금 드라마 업계가 전체적으로 힘들어.
우리도 최근 작품 2개가 다 적자여서 인원감축은 불가피한 것 같아.
회사의 태도는 어이없으리만큼 냉담했고, 내가 정규직인 것은 아무런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실제로 괴물 넷플릭스가 등장하고, 아니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니 여러 가지 이유들을 앞세워 드라마 산업은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주변에서 일자리를 잃었다는 스태프들의 야이기가 왕왕 들려왔지만, '어머 어떡해.' 정도의 안타까움이면 충분했다. 듣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천지 차이였지만, 5글자 정도로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같았다. 씨발 좆같네.
나는 아니겠지- 했던 백수가 되자 서른이라는 내 나이가 실감됐다.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는데, 커리어도 끊겼고 그렇다고 결혼할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이 이렇게나 편협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땐 그랬다. 내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플래시백.
전남친 누나는 너무 의존적이야.
대표 네가 재능이 있다면, 어떻게든 데려갔겠지.
나는 그들에게 '함께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말들만 모아 매일 밤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를 보잘것없게 만드는 이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