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 남자한테도 회사에서도 차이다.
남자에게 차인지 1주일 만에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친구의 위로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에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 몇 개가 빠르게 스쳐갔기 때문이다. '나 그냥 큰 걱정 없이 흘러가는 조연이면 안 될까?'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친구는 배달 음식을 받아야 한다며 이내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내 얼굴에 겨우 붙어있던 웃음기도 사라졌다.
/ 7개월 전 (회상)
2살 연하였던 전 남자친구는 연애 6개월 차에 미국으로 교환 학생을 갔다. 한 학기 정도 기다리는 것이 뭐가 대수냐-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금세 파도만 한 불안이 나를 덮쳤다. 일명 '불안형 애착 유형'으로 카테고리화되는 나는 상대가 날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기어코 으름장을 놓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기보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이래도 날 사랑할 거야?’라는 절대 풀 수 없는 사랑 테스트가 시작된다. 전 남자친구도 이런 나에게 끝내 백기를 들었다.
또, 또, 또, 나는 이렇게 연애를 망치는구나. 그렇다면 이제는 빠르게 다음 남자를 구할 순서다.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다 할 연애 공백기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 말인즉슨 이별의 아픔을 온전히 느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별 후 낮아진 자존감을 스스로 채우기보다 새로운 남자를 찾았다. 급하게 시작한 새로운 연애는 나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애써 회피하면서. 그게 쉽고 빠른 방법이고, 내 자존감은 고속 충전되었으니까.
몇 년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왜 그 타이밍에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영영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일까, 스물 아홉 끝자락에 마주한 이번 이별만큼은 내 힘으로 이겨내고 싶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를 마주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꽤나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자기혐오는 덤으로 딸려왔다. 그래도 상담 후엔 매번 상담 일지를 쓰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셀프 칭찬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잘 버티는 줄로만 알았는데, 한순간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Effect의 준말로 마음의 소리를 표기하는 대본 용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거짓말처럼 번쩍! 하고 선생님의 말뜻을 이해했다. 왜 만화에서 깨달음이 오는 상황을 전구가 켜지는 것으로 연출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 이 뜻이구나. 지금껏 나는 나를 그저 바꾸고 성장시켜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평가하고, 변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못 살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 3개월 만에 일평생을 함께한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를 겨우 마친 셈이지만, 희망이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