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주(Oaxaca)에 산타 마리아 델 툴레(Santa María del Tule)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몸통 둘레가 굻은 나무인 툴레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지 툴레 나무의 둘레를 감싸려면 성인 3~40명이 손을 맞잡고 둘러야 할 정도이며, 실제 둘레는 약 42m에 달한다.
그런데 이 나무에게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순히 크기만이 아니다. 이 나무의 수령은 2,000년 이상이라고 추정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자연유산인 만큼 지속적으로 나무의 건강과 성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매년 몇 밀리미터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숙이다. 내가 다 이루었다고 혹은 내가 끝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는 과정,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성숙이라 할 수 있다. 툴레 나무의 성장과 우리의 성숙이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 일보 후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지만,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뿐만 아니라 어떨 때는 더 후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고, 넘어져도 다시 또 일어나서 나아가는 그러한 나선형의 과정이 바로 우리 성숙의 모습이다.
22년 11월에 내한했던 행위예술가 요안 부르주아의 1분 30초의 트램펄린 공연 영상은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다. 계단 정상을 향해 춤추듯 오르면서 옆의 트램펄린으로 떨어지고, 그 반동으로 다시 계단을 오르고, 또 조금 올라가다가 다시 떨어지고,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이 반복되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확히 우리의 성숙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숙을 목표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더 민감해진다. 과거에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점차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 자신이 더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좌절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이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아는 그 상태가 바로 내가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아주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실수하고, 반드시 넘어진다. 부단히 나를 살피고 나를 바꾸어가는 노력들 속에서 실수와 잘못들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필로그에 말한 것처럼 우리가 완성된 그릇이 아니라 미완성된 그러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성숙을 향한 길에는 ‘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목표를 세운다. 목표에 도달한 후 느끼게 되는 공허함을 달래는 것이다. 그런데 성숙은 어떠한가?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다. 만약 성숙함을 어떤 목표치로 설정하고 달려간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새로운 경험과 도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내 앞에 놓인 매일의 삶에서 내리게 되는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깨달음 이것이 바로 우리를 더욱 성숙함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즐거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을 느끼는 이 과정이 바로 성숙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다.
성숙이라는 끝이 없는 길.
하지만, 그 길에 올라 걷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