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사만다>. 7

라면 먹고 가세요

by 샤골


술집 문을 나서자 눅눅한 알코올 냄새가 뒤로 밀려났다. 몇 걸음 걷다 보니 길 모퉁이에 환하게 불을 밝힌 분식집이 보였다.

튀김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식사 때를 놓친 손님 몇 명이 허겁지겁 숟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윤서는 잠깐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 집, 라면 있지 않을까요?”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그녀가 대답 대신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와 함께 그녀의 팔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팔꿈치 바깥쪽이 말캉하게 닿았다.

그 짧은 순간, 술기운에 더해진 체온과 숨결이 내 귓불까지 번져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걸음을 반 박자 앞서 끌어갔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발끝이 자연스레 그녀의 보폭에 맞춰졌다.


골목 깊숙이 좁은 길은 조용했다.

가게 셔터는 대부분 내려가 있었고

남아 있는 불빛 몇 줄기가 도로 위에 얼룩처럼 흩어졌다.

소음 대부분이 차단되어 우리 발걸음과 바람이 나뭇잎을 가로질러 내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여백을 메웠다.


윤서의 어깨가 작게 움직일 때마다 팔짱 낀 팔이 따라 흔들렸고, 그 리듬이 내 호흡과 맞아떨어졌다.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그 안의 공기는 이미 방향을 정해놓은 듯 단단했다.


몇 분쯤 걸었을까.

균일하게 세워진 오피스텔 건물들이 앞을 막았다.

불 켜진 창들이 네모난 건반처럼 반복되었다.

어느 오피스텔 현관 앞에서 윤서는 걸음을 멈췄다.

카드키를 꺼내 들며 잠시 고개를 돌렸고 그 짧은 순간에 팔짱의 힘이 조금 더 조여왔다.


나는 말없이 그녀 곁에 서 있었다.

불빛 아래 공기만이 계속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다 왔어요. 나 여기 살아요.”


“라면 먹자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니까요. 어디서 먹을지는 안 정했잖아요.”


윤서는 현관문을 열며 미소 지었다.

“이 집이 라면을 잘해요. 먹고 갈래요?”


난 잠시 멈칫했다.

“참나, 그 대사가 주는 의미를 나도 압니다. 오해하기 좋은 상황에 던지셨네.”


윤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민호 씨, 내 또 하나의 장점이 있어요.

나는 오해하게끔 말을 하지 않아요.

그 라면 먹고 가요.”


나는 오해하고 있지 않다.

감정의 결이 이끌듯, 이 순간은 이미 나를 넘어 있었다.


“아… 그러면, 술을 한잔 더 하죠.

지금 하는 ‘이런 적 처음’이란 말은 진짜예요.

먼저 올라가요. 술이랑 필요한 것 좀 사올게요.”


“알았어요.

먹을 건 충분히 있으니까 마시고 싶은 술만 조금 사와요. 천천히.”


“몇 호예요?”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려는 윤서가 걸음을 가볍게 멈췄다.


“1504호.”


윤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 무심한 태도가 나에겐 더 짙은 긴장을 만들어냈다.


오피스텔 1층 모퉁이에 있던 편의점은 불필요하게 환한 조명 아래 조용히 열려 있었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캔맥주와 소주병들이 차갑게 반짝였다.

조금 마음의 여유를 찾은 듯 느릿느릿 소주 두 병을 집었다.

카운터로 향하는 길목에서 숙취해소제도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산대 옆 회색 걸이에 걸린 콘돔 한 팩을 집어 들었다.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괜히 두리번거렸다.


계산을 마치고 건물의 현관으로 향하는 길,

내 손목에 걸린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봉지 안쪽에 있던 콘돔을 꺼내 바지 주머니로 옮겼다.

모퉁이를 돌아 나와 다다른 오피스텔 현관을 올려다봤다.

서늘한 공기가 목을 스쳤다.


1504.

이사를 다닐 때마다 전에 살던 집 호수를 의식적으로 기억하려 했던 나에게, 이 숫자는 얼마나 머물게 될 것인가.


초인종을 눌렀다.

짧은 정적 뒤에 문이 열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잠시 멈춰 섰다.

취기와 피로가 뒤섞여 머리 한구석이 시큰하고

맑은 사고가 흐려졌지만,

발걸음은 안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