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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Sep 05. 2017

귀마개의 꿈..

무엇이든 막아 드립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당신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불통의 아이콘]

나는 수많은 소음을 먹고 산다. 그것이 내 밥줄이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하는 일이다. 기계 마찰음부터 엔진음과 잡다한 세상의 소리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렇게 만들어졌고 또 그렇게 쓰이고 있다.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하고 오롯이 정해진 그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내 역할은 차단하는 것이지 듣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소통이 아니라 불통을 하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임을 깨닫게 된다.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못 듣게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s://pixabay.com ]

나도 소통하고 싶다.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소리를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리에 공감하고 대화하고 싶다. 그런데 나에게는 소리를 흡입하는 능력만 있지 소리를 내 보내는 기능은 없다. 지겹도록 경청할 수는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래서 공감능력을 갖추는 것이 나에겐 꿈이다.

[위기를 기회로]

하지만 나에겐 특출함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회복탄력성이 우수하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다른 용도로 쓰기도 한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눌러보고 만져보고 비틀어보기도 한다. 눌러도 눌러도 비틀고 비틀어도 기지개 켜며 다시 고개 바짝 든다. "한 번 해봐!"라는 도발적인 자세로 말이다. 그 특출함이 가끔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소리만 흡입하는 것이 아니라 물도 흡입할 줄 안다. 하마처럼 내 몸의 몇 배는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해질 때는 덩치를 두 배 이상으로 키운다. 왜소함이 아닌 우람함을 뽐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무섭기보다는 귀여운가 보다. 처음엔 놀래더니 재미있어하며 웃는다. 위협을 주기보다는 뜻하지 않게, 허허실실 전략이 되고 만다. 그래도 미소 띤 분위기로 전환되었으니 반쯤은 성공한 셈이다.


[잔소리에 지친다]

보통 듣기 싫은 소리를 잔소리라고 한다. 수많은 소음들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반복되는 재잘거림에는 나도 버티기 힘들다. 강력한 소음에는 잘 설계되어 있지만 재잘거림이 동반된 잔소리에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계속 듣다 보면 그만 미쳐버릴 것 같다. 그래서 듣다 듣다 힘들면 스스로 몸을 찢는다. 내가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찢어져 버려지는 것이기에 말이다. 고통을 이겨내는 유일한 길은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도피고 회피라고 말하겠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의 표현일 뿐이다. 미치는 것보다야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울림이 힘이 된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 있다. <라면을 끓이며 - 김훈>

이제까지 다양한 소리를 들었지만,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친근감을 느낀다. 그들의 소리에는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일정한 음률을 가지는 듯 하지만 그 나름의 소리엔 각각 다른 색채의 향기가 물들어 있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과 설렘의 색채가 묻은 그들의 소리에 가끔씩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기도 한다. 나도 슬픔을 알고, 나도 눈물 흘릴 줄 알고, 나도 기쁨을 느낄 줄 알게 되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소음만을 먹는 일이 아님을 알고 나니 새로운 힘이 불끈 용솟음친다.


소리를 막아서려 하지 말고
소리를 걸려주고 정화시켜주는
필터 역할이 내가 가야 될 길인 것 같다.


<표지 출처 :  jaewoog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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